아비냐 증손자냐

아비냐 증손자냐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해학(諧謔)형

• 갈래 : 민담
• 시대 : 조선
• 신분 : 관료
• 지역 : 기호
• 출처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
• 내용 :
한 정승 집에서 사위를 봤는데, 이 사위가 좀 의뭉스러운 데가 있었다.정승이 욕심이 많아서 돈보따리나 갖다주는 사람에게는 벼슬을 잘도 떼어주는데,이 사위가 엉큼한 짓을 하나 벌였다. 정승이 날마다 대궐에 드나들 때 타고 다니는 흰 말을 슬쩍 훔쳐내어 새까맣게 먹칠을 해 가지고 도로 정승 집에 끌고 갔다. “별 것은 아니오나 괜찮은 말 한 필을 가져왔으니 요긴하게 쓰십시오”하고 까만 말을 턱 내놓았다. 정승은 아끼던 말을 잃고 곤란을 겪고 있던 차에 사위가 말을 갖다 바치니 무척 반가워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말이 알아서 대궐로 집으로 척척 찾아다니니 정승은 참 신기하다 생각했다. 그때 사위가 하는 말이 “벌써부터 그 말을 대감께 드리려고 맘먹고 단단히 길을 가르쳐 놨습지요” 이렇게 능청을 떠니 그만 정승이 감격을 했다. 그래서 보답을 하노라고 대뜸 시골 현감 자리 하나 뚝 떼어주었다.

사위는 속임수가 들통날까봐 부리나케 시골로 내려갔다. 그러고 난 어느 날 정승이 말을 타고 대궐로 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시커먼 먹물이 쏟아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검정 말이 흰 말이 되었다. 그제야 정승이 사위한테 속은 걸 알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정승 아들은 분이 나서 제 매부를 잡으러 시골로 내려갔다. 그러나 정승 사위는 미리 짐작을 하고 일을 꾸몄다. 정승 아들은 말을 달려 마을 어귀에 이르러 주막에 들어섰다. 주막에서 요기를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건너 산기슭에 초막이 하나 있고, 거기에 흰 옷 입은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정승 아들은 궁금해서 저 바둑두는 노인들이 누구냐고 주모에게 물었다. 주모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되받아 말하기를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요. 저 건너에 초막이 어디 있으며 바둑 두는 노인은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하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주모가 술상을 나르는 기생들에게 물으니 기생들도 하나같이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말했다. 다 미리 짜고 하는 수작이지만 서울서 금방 내려온 정승 아들은 내막을 알 턱이 없었다. 정승 아들이 하도 이상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주모가 손뼉을 치더니 “오라, 옛날부터 이 고을에 신선이 산다는 말이 있더니, 신선이 현신했나 봅니다. 나리 눈에만 보이니 혹 나리께서 신선이 아니온지요”하고 능청을 떨었다. 정승 아들은 그만 귀가 솔깃해져서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과연 노인 둘이서 바둑을 두는데, 노인이 정승 아들을 불러 맑은 술 한 잔을 따라주면서 마시라고 했다. 거푸 석 잔을 받아마시니 정승 아들은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래서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을 잤다. 얼마나 오래 잤는지 눈을 떠 보니 초막도 온데간데 없고 신선도 온데간데 없었다. ‘아이쿠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그 사이에 세월이 많이 흘렀나 보다’생각한 정승 아들은 서둘러 주막으로 내려오니 전에 보던 사람들은 안 보이고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혹시나 하고 주모를 불러 이 고을 관장이 아무개 정승의 사위가 아니냐고 물었다. 주모가 펄쩍 뛰며 하는 말이 “그분이라면 백 년 전에 이 고을을 맡은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러는 것이었다. 정승 아들은 그 사이에 백 년이 지난 걸로 생각하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갔다. 집에 턱 들어서니 저희 아버지를 닮은 노인이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백 년 세월을 쳐서 대강 셈을 놓아보니 제 증손자 뻘은 되겠다 싶어 성큼성큼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너는 어찌 너희 고조부를 그리도 쏙 빼닮았느냐”했다. 정승이 기가 막혀 자기 아들이 그만 미쳐버렸구나 싶어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데 “네 이놈, 아무리 처음 보는 조상이라 하나 네 증조부 앞에서 감히 담배질을 해? ” 이러면서 제 아버지의 따귀를 한 대 올려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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