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과 천부

사신과 천부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해학(諧謔)형

• 갈래 : 민담
• 시대 : 조선
• 신분 : 일반
• 지역 : 기타
• 출처 : 어우야담 (51)
• 내용 :
옛날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에 와서, 동방예의지국이니 반드시 이인(異人)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시험해 보기로 했다. 평양을 지나다가 길가에서 신장이 8, 9척이나 되고, 수염이 디(帶)에까지 이르는 한 장부를 보고, 기이하게 여겼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신이 손가락으로 둥근 모양을 해 보이니, 이 장부는 그에 응답해 손가락으로 네모난 모양을 지어보였다. 다음 세 손가락을 꾸부려 보이니 장부는 다섯 손가락을 꾸부려 응답했다. 이어 사신이 옷자락을 들어 보이니 장부는 입을 가리켜 보이며 답했다. 사신이 서울에 와서 관원에게 말하기를, “조선은 예의지국이 맞다. 내 평양에서 건장하게 생긴 한 장부를 시험해 보았다.”고 말하고 다음 얘기를 했다.

“‘하늘이 둥근 것(天圓)’을 아느냐는 뜻으로 손가락을 둥글게 해 보였더니, 그 장부는 ‘땅이 모난 것(地方)’도 안다며 손가락으로 네모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다시 ‘삼재(三才, 天地人)’를 알고 있느냐고 손가락을 세 개 꾸부렸더니, 그는 ‘오상(五常, 仁義禮智信)’도 안다는 뜻으로 손가락을 다섯 개 꾸부려 보였다. 또 내가 ‘옛날에는 긴 옷을 입고 인격적으로 정치했다’는 뜻으로 옷자락을 만지니, 그는 ‘말세(末世)에는 말로만 정치한다.’는 뜻으로 입을 가리켰다. 길가 천한 장부도 이렇게 유식한데 사대부 지식인들은 어떻겠느냐”라고 말했다. 관원이 이 얘기를 듣고 기이하게 생각하고, 평양에 연락해 그 장부를 급히 올려 보내라 했다.

이 사람이 왔기에 물어 보았는데, 사신이 손가락으로 둥글게 했을 때에, 장부는 네모난 인절병(引切餠) 떡이 먹고 싶은데 사신이 둥근 절병 떡을 먹고 싶다고 하기에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신이 손가락을 세 개 꾸부렸을 때에, 장부는 사신이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싶다고 하기에, 자기는 하루 다섯 끼를 먹고 싶어 그랬다고 대답했다. 사신이 옷깃을 만질 때에는 왜 입을 가리켰느냐고 물으니, 장부는 “사신이 걱정하는 것은 옷이라고 하기에 저는 옷보다 먹을 것을 더 걱정하기 때문에 입을 가리킨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 얘기를 들은 조정 신하들이 모두 웃었지만, 중국 사신에게는 말해주지 않으니, 중국 사신은 이 장부를 기남자(奇男子)라고 하며 예의를 갖추어 존경했다.

중국 사신이 이 장부를 존경한 것은 반드시 겉모습만 보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의 예의지국이란 이름에 억압당한 것이다. 근래 재상 유전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이름난 관상자에게, 사신을 수행한 노복 중 건장한 사람을 가려, 자기 옷을 입혀 사신으로 꾸며 보였더니, 관상자는 보자마자 ‘숯장사’라고 말하고, 자기를 속였다고 불평했다. 이어 유전 자신이 나가니, 관상자는 존경을 표하면서 “진정한 재상입니다.”하고 말했다. 관상자의 사람 감식 능력은 우리나라에 왔던 사신의 사람 보는 안목보다 나은 점이 있다.

연관목차

1134/1461
해학형
사신과 천부 지금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