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부인 평강공주

온달 부인 평강공주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결연(結緣)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삼국사기 (권45)
• 내용 :
고구려 평강왕 때, 겉은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만 마음속은 명석한 온달이란 노총각이 있었다. 이 때 평강왕의 공주가 잘 울어 시끄럽게 하니, 그 부친인 임금이 “너는 잘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서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가야 하겠다.” 고 말했다. 뒤에 공주 나이 16세에 귀한 집안인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니, 공주는 “대왕께서는 항상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 해놓고, 지금 와서 왜 다른 집으로 시집보내려 하십니까 보잘것없는 사나이도 식언을 안 하는데 임금이 식언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예부터 임금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왕의 말씀이 틀렸으니 따를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화를 내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 딸이라 할 수 없으니 네 마음대로 떠나라.”라고 말했다.

이에 공주는 값진 팔찌 수십 개를 팔에 걸고 궁성을 나와 온달 집을 찾아갔다. 장님인 온달 모친은, 집이 가난하고 누추해 귀한 사람이 을 곳이 아닌데, 부드러운 살결과 향기가 풍기는 것으로 보아 귀인 같다고 하면서, 아들 온달은 유피(楡皮)를 채취하러 산에 갔으니, 누구의 꾀임에 빠져 여기 왔으면 빨리 돌아가라고 했다 공주는 곧 그 집을 나와 산 아래에서 온달을 기다렸다가, 유피를 지고 오는 온달을 보고 남편이 되기 위해 왔다는 말을 했다. 온달은 “이런 산 속은 어린 여자가 있을 곳이 아닌데, 필시 당신은 여우가 둔갑해 나를 홀리려는 것 같으니, 나를 위협하지 말라.” 하고는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공주는 온달의 집 사립문 아래에서 밤을 새고 이튿날 다시 들어가 모자에게 자신이 온 내력을 설명했다.

온달이 결정을 못하니, 모친은 “지극히 가난하고 누추한 나의 아들에게는 귀인이 배필로 될 수 없다.” 하고는 역시 거절했다. 공주는 옛 사람이 말하기를 “마음만 맞으면 한 알의 곡식과 한 자의 옷감만 있어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고는 간청해, 결국 온달과 부부가 되었다. 공주는 가지고 온 보물을 팔아 전답과 종을 사서 가정을 이루고, 또 국가에서 퇴역한 야윈 말을 사서 잘 먹여 기르도록 했다. 고구려의 풍습에는 3월 3일에 낙랑 언덕에서 사냥대회를 열어 그 잡은 짐승으로 하늘과 산천에 제사하는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는 왕과 많은 신하들이 사냥에 참가하는데. 여기에 온달이 참여했다. 그 결과 온달이 가장 많은 짐승을 잡으니, 왕이 불러 온달임을 알고는 의아해했다. 뒤에 중국 후주(後周) 무제(武帝)가 요동을 치면서 구원병을 요청했는데, 이 전쟁에 온달이 출전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큰 공을 세웠다. 이 결과 왕은 크게 칭찬하고 정식으로 예를 갖춰 사위로 맞이하고, 대형(人兄)의 벼슬을 내렸다. 평강왕이 사망하고 양광왕이 등극하니, 온달이 왕에게 아뢰기를, 신라를 쳐서 옛날 고구려 땅인 한강 북쪽을 되찾기 위해 출전하겠다고 했다. 왕의 허락을 받은 온달은 계립현(鷄立縣)과 죽령 서쪽을 되찾지 않고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웠는데,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그만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군사들이 온달의 장례를 지내려 하니, 그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곧 공주가 가서 “삶과 죽음이 결정났으니 돌아가십시오.” 하면서, 관을 어루만지고 열결하니 관이 움직여 장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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