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논개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부덕(婦德)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조선
• 신분 : 일반
• 지역 : 영남
• 출처 : 청구야담 (김200)
• 내용 :
논개는 진양(晉陽) 기생이다. 임진(壬辰)년에 왜적이 진주성을 공격했는데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성을 굳게 지켜, 왜적이 성을 여러 번 공격했으나 큰 손실만 입히고 성은 함락시키지 못한 채 물러갔다. 이듬해 6월 왜장 청정(淸正)이 10만 병력을 이끌고, 반드시 함락시켜 작년의 치욕을 씻으려고 공격해 왔다. 이때 경상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와 충정 병사 황진(黃進), 창의사 김천일, 김해 부사(府使) 이종인(李宗仁), 복수장(復讐將) 고종후(高從厚), 사천 현감 장윤(張潤) 등이 성안에서 수비하고 있었다. 다만 홍의(紅衣) 장군 곽재우(郭再祐)는 왜적이 필사적으로 공격하여 꼭 함락시키려 하기 때문에, 성이 무너질 것을 미리 알아서 들어가지 않았다. 성안의 여러 지도자들은 촉석루(矗石樓)에 모여 필사를 다짐했고, 왜적들은 작년의 패배를 설욕해야 한다면서 결사적으로 덤볐다. 10여 일 동안 싸웠으나 기어이 성이 함락되어, 성안의 6만 백성들이 죽음을 당했고, 모든 지도자들은 남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때 논개가 치장을 화려하게 꾸미고 왜장 중 가장 뛰어난 장수 앞으로 나아가 그를 유인했다. 계속 유인해 강가 바위 위에 올라가서 함께 춤추었는데, 이 바위는 강 언덕에 세워져 있고 3면이 시퍼런 강물이었다. 논개가 왜장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물속으로 뛰어드니, 왜군들이 크게 놀라 동요했다. 전쟁이 끝나 조정에서는 논개에게 ‘의기(義妓)’라는 이름을 내리고, 정문(旌門)을 세워 포양(揚)하게 하고 제사를 모시게 했다. 그리고 그 바위를 ‘의기암(義妓巖)’이라 부르며, ‘일대장강천추의열(一帶長江千秋義烈)’ 여덟 글자를 새겼다. 이 바위를 또한 ‘낙화암(落花巖)’이라고도 하는데, 물에 빠진 것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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