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부인 신씨

중종 부인 신씨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부덕(婦德)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조선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호
• 출처 : 동사잡록 (16)
• 내용 :
신씨는 중종이 왕이 되기 전에 혼인한 부인이다. 박원동 등 삼대장이 역적 신수근의 딸이라고 폐비를 주장하면서 “신들이 불안하면 조정이 불안하다고 조정이 불안하면 종사가 위태롭습니다.” 라고 하면서 왕을 협박했다. 어쩔수 없어 중종은 신씨를 내보내면서, 차마 떨어지지 못해 붙잡고 울었다.

그 뒤에도 중종은 신씨를 잊지 못해, 중국 사신이 올 때면 모화관으로 사신 마중을 나가, 장막 속으로 들어가 사신을 맞는 동안 사람을 시켜 자기 말을 신씨의 집으로 보냈다. 신씨는 이 말을 어루만지고 반기면서, 손수 부엌에 나가 쌀죽을 끓여 마시게 한 다음 돌려보냈다.

병인(丙寅,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으로 중종 부인 신씨도 궁중으로 들어와 왕비로 받들어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연산군의 처남으로 좌의정 자리에 있으면서 세력을 누렸다가 반정에 의해 역적으로 처형된 신수근(愼守謹)이 부친이었으므로, 박원종(朴元宗) 등 반정 주도 세력들이, 역적의 딸을 국모로 둘 수 없다고 반발하여, 신씨는 입궁 4일만에 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리하여 중종은 윤여필(尹汝弼)의 딸을 새 왕비로 책봉하니 이가 장경왕후(章敬王后)이다. 을해(乙亥, 1515) 장경왕후가 아들을 낳고 7일만에 사망하니, 다시 일부에서 전 부인인 신씨를 왕비로 모셔들이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뒤에 전 부인 신씨의 신주는 그녀의 외가 집안에 의탁되어 제대로 제사도 올리지 못하다가, 현종의 특명으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 숙종 때에는 왕비로 복위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행되지 못하다가, 영조 경신(庚申, 1740)에 복위되어 온릉(溫陵)이라는 묘호가 정해졌다.

앞서 박원종 등 반정 주도 세력의 주장에 따라 신씨를 대궐 밖으로 내보냈으나, 중종의 마음은 슬픔을 이길 수 없었다. 항상 부인 신씨를 잊지 못해 경회루에 올라가 신씨가 살고 있는 북쪽 집을 바라보았다. 부인도 이 뜻을 알아, 붉은 치마를 집 뒤 바위에 둘러 그 정을 표시했는데, 사람들이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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