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일본 국왕 원의정이 빙문하고 토산물을 바치다

[조선 성종]일본 국왕 원의정이 빙문하고 토산물을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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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왕(日本國王) 원의정(源義政)이 중[僧] 혜인(惠仁)을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고, 이어서 토산물을 바쳤다. 그 글에 이르기를, ˝귀국(貴國)이 나의 폐읍과 선린(善隣)을 맺어, 있고 없는 것을 서로 통상(通商)한 것이 몇 해가 되었습니다. 사자(使者)가 돌아왔을 때 모두 말하기를, ‘대우(待遇)함이 매우 후(厚)하여서 부담이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폐읍은 전쟁을 겪은 이래로 승려(僧廬)와 불전(佛殿)이 봉내(封內)에 있던 것이 과반(過半)이나 없어졌습니다. 과인(寡人)이 이것을 근심하였으나, 요즈음은 조금 옛 관습(貫習)을 회복하였습니다. 경성(京城) 남쪽에 교원(敎院)이 있는데, 반주삼매(般舟三昧)라 합니다. 당우(堂宇)를 새로 짓자, 승도(僧徒)들이 청하기를, ‘대장경(大藏經)을 구해서 국보(國寶)로 삼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난 병오년 에 청구한 불경(佛經)과 방물(方物)도 만약에 회답(回答)하는 글과 함께 이곳에 이르고, 또 아뢴바 경권(經卷) 의 산질(散秩)을 수집하여 하사해 주신다면, 자못 혜의(惠意)가 번다(煩多)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구하는 것을 가볍게 여길 수 없고, 그렇게도 저들이 청하여 마지 않으니, 그 뜻이 들어줄 만하므로, 이에 원승(院僧) 혜인(惠仁)을 택하여 상관인(上官人)을 삼아 보냅니다. 대개 법보(法寶)는 팔길(八吉) · 육승(六勝) 이 있는 바이므로, 국가에서 이를 의뢰(依賴)하오니, 이것은 바로 교화(敎化)가 바닷 마을에 미치는 것입니다. 변변치 못한 토산물을 별폭(別幅)과 같이 갖추었습니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20년 8월 10일(을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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