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일본국 상황을 듣고 정승들과 의논하여 통신사는 계획대로 보내도록 하다

[조선 성종]일본국 상황을 듣고 정승들과 의논하여 통신사는 계획대로 보내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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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지금 온 대내전(大內殿)의 사송(使送) 상관인(上官人) 중[僧] 서흥(瑞興)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1. 대내전(大內殿)의 도읍은 본래 주방주(周防州)였는데, 지난 정해년 7월에 왕도(王都)로 들어갔다가 정유년 11월에 본래의 도읍으로 돌아왔습니다. 1. 대내전은 지난 무술년 7월 초8일에 본도(本都)에서 군사를 내어, 8월 27일에 적간관(赤間關)을 건너서 풍전주에 들어가 소이전(小二殿)과 서로 싸웠는데, 소이전이 패하여 달아났으며, 죽은 자는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1. 대내전이 다시 8만의 군사를 일으키고, 소이전도 다섯 장소에 진(陣)을 치고 기다렸는데, 9월 14일에 싸움이 붙어 소이전은 다섯 장소의 진이 동시에 패하여 도망하였습니다. 1. 소이전의 군사가 패하여 축전주(筑前州)로 달아났는데, 형세가 급하게 되자, 서부(西府)의 성문(城門)을 열고서 달아났으며, 간 방향을 알 수 없었습니다. 1. 후에 들으니, 소이전이 산골짜기의 험준하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하였다고 하나, 지명(地名)은 알 수 없고, 그 따라간 사람의 수도 다소(多少)를 알 수 없습니다. 1. 소이전의 소관인 축전주(筑前州) 등의 군현(郡縣)은 지금 모두 대내전에 귀순(歸順)하였으므로, 대관(代官)을 두었습니다. 1. 경도(京都)의 도로에는 해적(海賊)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미리 헤아릴 수 없으나, 대마도(對馬島)에서 대내전(大內殿)까지는 대마도에서 호송(護送)하고, 대내전에서 경도(京都)까지는 대내전에서 치보(馳報)하는 등 서로 전하여 호송하겠으니, 이 해적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1. 우리들이 서계(書契)를 받고 아직 떠나기 전에 대내전이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발하였으며, 우리들은 지난 8월 24일에 본도를 출발하여 9월 어느 날 장문주(長門州)에 이르러 바람을 기다렸는데, 장문주와 본도의 거리가 멀지 아니하기 때문에 매우 상세하게 전하여 들은 것입니다. 또 대마도(對馬島) 왜 첨지(倭僉知) 평국충(平國忠)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1. 전날 소이전(小二殿)이 도주(島主)를 붙잡아다 놓고 몇 년 동안 돌려보내지 않았었으므로, 이로 인하여 도주도 소이전과 화목하지 않았습니다. 대내전이 경도(京都)에 있을 때 일찍이 이러한 뜻을 알았었고, 그 후 도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소이전과 대내전은 모두 거추(巨酋)인데, 어찌 반드시 나연(那衍) 은 소이전만이 되어야 하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도주도 사람을 보내어 서신을 통하고 우호를 맺었습니다. 지난해에 서로 싸웠을 때 본도에서 만약 소이전을 구원해 주었다면 이처럼 심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에 도주도 대내전에 대한 후의(厚意)로써 우리들을 보내어 이 행차를 호송하게 하였습니다. 1. 대내전과 소이전의 전쟁에 대한 승패(勝敗)의 결정은 도주도 일찍이 들었습니다. 1. ‘도내에서 만약 일찍이 대내전과 소이전의 전쟁에 대한 승패의 결정을 알았다면, 얼마 전에 전쟁이 그치고 바닷길에 막힘이 없다고 치보(馳報)한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 두 거추(巨酋)가 싸울 때에는 백성들이 산으로 올라가 도망하였습니다만, 대내전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군현에 대관(代官)을 두기에 이르러서는 백성들이 모두 옛날대로 생업에 안정하게 되었으므로, 전날 도주가 이와 같이 치보하였던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보다 앞서 통신사(通信使)가 이미 떠났는데, 서흥(瑞興) 등이 일본(日本)의 병란(兵亂)의 일을 말하였으나, 그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묻고서 아뢰도록 한 것이다. 임금이 대신(大臣)들에게 명하여 통신(通信)할지의 여부(與否)를 의논하도록 하였다. 정창손(鄭昌孫)·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윤사흔(尹士昕)·김국광(金國光)·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 등은 의논하기를, ˝통신(通信)은 대의(大義)에 있어서 진실로 폐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곳의 사신이 말한 바를 보건대, 그 곳에서는 아직 평화롭지 못하고 전쟁이 일어나 시끄러운 때가 있다고 하니, 예기치 못한 변(變)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지금 통신사가 이미 길을 떠났으나, 저쪽 나라에서도 이미 전하의 후한 뜻을 알고 있고, 더욱이 <중략>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 4월 17일(계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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