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는 문제에 관해 신하들과 논의하다

[조선 성종]일본에 통신사를 보내는 문제에 관해 신하들과 논의하다

분류 교통/통신/지리 > 해양문화사전 > 해양사 > 교류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임금이 이르기를, ˝그 전에 들으니, ‘일본국(日本國)은 전쟁[兵革]이 그치지 아니하여 전산전이 주둔시킨 군사를 풀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이제 통신사(通信使)를 보내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영사(領事) 정창손(鄭昌孫)이 대답하기를, ˝두 나라가 통호(通好)하는 것은 옛날의 도리입니다. 다만 저들은 우리가 사신(使臣)을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신(臣)의 생각으로는 보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영사(領事) 홍윤성(洪允成)이 아뢰기를, ˝세조(世祖)께서 매양 사신을 보내어 통신(通信)하고자 하였으나, 해로(海路)가 험하고 먼 것을 염려하여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 대내전(大內殿)의 사신이 와서 물소[水牛]를 바치고 인하여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대국(大國)을 공경하여 섬기는데, 대국은 어찌하여 한 번도 통신을 하지 아니합니까? 라고 하면서 청하는 것이 심히 간절하므로, 마지못하여 송처검(宋處儉)을 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倭)로서 향화(向化)한 이예(李藝)의 아들 이종실(李宗實)이 수로(水路)를 알므로 같이 보내게 되었습?? 이종실이 양식과 물건을 탐내어 배에 실은 것이 매우 무거웠고, 또 날씨가 순조롭지 못하여 송처검이 출발하지 아니하고자 하였으나, 이종실이 송처검에게 술을 권하여 그가 취한 틈을 타서 홑이불로 싸서 배 안에 두고 배를 출발시켰으므로 얼마 되지 아니하여 갑자기 물에 빠져 죽었으니, 이는 스스로 실패를 취(取)한 것입니다. 이보다 앞서의 사신들은 모두 무사히 내왕(來往)하였습니다. 변효문(卞孝文)·신숙주(申叔舟)·원효연(元孝然)·김호인(金好仁)과 같은 사람이 이들이니, 만일 사신을 보내고자 한다면 해로(海路)가 험하고 멀다고 해서 그만두는 것은 마땅하지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병란(兵亂)의 시기에 사신을 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하므로, 정창손이 말하기를, ˝왜의 사신이 이미 왕래하는 데에 막힌 바가 없었으니, 길이 막히지 않은 것은 알수 있습니다. 다만 왜인(倭人)이 우리가 사신을 보내는 것을 싫어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지난 겨울에 일본국의 사신 정구수좌(正球首座)가 사신을 보내주도록 청하였고, 또 이르기를, ‘만약 사신을 보내면 내가 마땅히 함께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보면 저들이 어찌 이를 싫어하겠느냐?˝ 하고, 이것을 예조(禮曹)에 하교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6년 6월 4일(신사)조.

연관목차

399/2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