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조신이 보진 태사에게 보내는 편지

[조선 선조]조신이 보진 태사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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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調信)이 보진 태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일본국 대마도에 거주하는 평 조신(平調信)은 황공하게도 삼가 군문 찬획 보진 태사 시의 합하(侍衣閤下)에게 아룁니다. 혜서가 간절하여 읽노라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천조에서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복건(福建)의 김 군문(金軍門)에게 올린 편지로 인하여 삼관(三官)이 구두로 지취(旨趣)를 말한 것까지 언급하여 정의(廷議)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는 바, 이 때문에 화호하는 일이 지연되었으니 유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에 앞서 청정이 조선에 있을 때에 대사께서 운송(雲松)을 청정의 진영에 보냈는데, 그의 가신(家臣) 희팔(喜八)이 먼저 나와 맞이하였고 나중에 그가 나와서 상대하였으나, 예절이 법도에 맞지 않고 언어가 공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전해 듣고는 매우 놀랐습니다. 이제 그의 편지를 초(抄)한 것을 보니 ˝귀국이 만약 화친하지 않는다면 이는 예를 어기는 것이다. 그러니 훗날 병선(兵船)으로 침입하든지 적선(賊船)으로 노략질하든지 하여 원수가 될 것이 틀림없다…….˝ 하였습니다. 제가 이것으로 살피건대 그는 지금도 옛날의 청정입니다. 그리고 그의 편지 끝에 일본의 정삭(正朔)을 기록하였습니다. 옛말에 ˝관원은 바늘처럼 사소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는 거마(車馬)를 사통(私通)하였습니다. 일본이 정삭을 세운 것은 사사로운 거마인데 청정이 김 군문(金軍門)에게 적어 올렸으니 누가 이를 예라고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는 모두 그의 잘못이니 제가 어찌 억지로 병통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이에 일본의 사세를 살펴보면 털끝만큼도 변함이 없습니다. 합하께서는 예조(禮曹)의 대인(大人)에게 말해주셔서 총독 군문 노야께 전보(轉報)하여 빨리 화호를 정함으로써 만민으로 하여금 태평스런 지역에 살 수 있게 해 주소서. 이것 또한 인애(仁愛)의 일단(一端)이니, 늦지 말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신정(新正)을 축하하며 반드시 대사(大師)의 편지 내용을 덕천가강(德川家康)에게 보고하겠습니다. 만력(萬曆) 31년 2월 12일 아룁니다.˝ 하였는데, 전 파총(全把總)에게 【전계신(全繼信)이다.】 보낸 서신도 이와 같았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선조 36년 3월 24일(경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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