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종]영경연사 윤원형 등이 통신사 파견에 대해 다시 아뢰다

[조선 명종]영경연사 윤원형 등이 통신사 파견에 대해 다시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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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영경연사 윤원형이 아뢰기를, ˝세견선에 대해서는 주어야 된다는 사람도 있고 주지 않아야 된다는 사람도 있는데, 차라리 저들에게 속더라도 관원을 보내어 살펴본 연후에 주는 것이 명분이 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해 호남에서 노략질한 자들은 모두 우리나라 말을 하였으니 대마도의 향도(向導)로 온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일본 사신이 또 공동하는 말을 하였는데, 속이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왕이 해외의 오랑캐를 대우함에 있어서 예양(禮讓)으로 책하지 않고 그들의 노여움을 격동시켜서야 되겠습니까. 관원을 보내고 나서 세선을 주면 저들은 관원 보낸 것을 은명(恩命)으로 여길 것입니다.˝ 사신은 논한다. 대마도가 세선·세미를 당연히 받아 갈 물건으로 여겨 삭감하고 빼앗은 것만을 원망하고 있으니, 50척을 다 준다 해도 옛것을 다시 얻은 것으로 여기는 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윤원형의, 관원을 보내는 것을 은명으로 여길 것이라는 말은 너무도 오활하지 않은가. 인정은 서로 같은 것이다. 호남 변경이 왜적에게 해를 입었고 표류한 왜적이 변장에게 섬멸당했으니, 저들이 우리를 잊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저들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저들이 자기들의 허실을 탐색한다고 의심하게 되면 뜻밖의 변이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하고, 동지경연사 홍섬이 아뢰기를, ˝삼공과 영부사에게는 소신(小臣)이 직접 가서 의논했는데, 심연원·상진·윤개의 대체적인 뜻은 같았습니다만 상진은 뜻밖의 변이 있을까 염려했습니다. 조종조에서 50척을 다 준 것은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종속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함이었을 뿐입니다. 유감을 품은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노략질을 하면 우리 백성이 편안할 수가 없으니, 관원을 보내어 상황을 살펴본 연후에 세선을 주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일이 왜인에게 관계되기 때문에 비밀히 의논하지 않으면 누설되겠기에 비밀히 의논한 것이다. 대마도와는 통신을 오랫동안 폐했기 때문에 의논이 귀일되지 못하므로, 널리 의논해서 사람들의 심정을 알고자 한 것이다. 조종조에도 통신했기 때문에 시험삼아 사신을 보내려고 했을 뿐이다.˝ 하였다. 대사간 박민헌(朴民獻)이 아뢰기를, ˝재력이 고갈되고 호구도 감축되어 나라가 텅 비게 되었으니, 이것이 나라의 큰 걱정입니다. 조정의 큰 걱정은 기강이 확립되지 않고 공도(公道)가 행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으로, 비유컨대 원기를 상실한 사람에게 모든 병이 일시에 발생하여 침자(針刺)가 아니면 구료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사람들을 보면 부형(父兄)들이 가르치는 것이 묵묵히 말하지 말라는 것이므로 비록 언론하는 자리에 있어도 모두 말하는 것을 꺼리니, 이는 당금의 큰 폐단입니다. 임금이 정치를 이룩하는 길은 언로(言路)를 통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언로가 통하면 기강도 확립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매우 절실하게 다스려지기를 구하는데도 다스려지는 효험을 보지 못하니, 신은 아마도 언로가 완전히 넓혀지지 않아서인가 합니다.˝ 사신은 논한다. 맹자가, 저 혼자 잘 아는 체하는 얼굴빛이 사람을 천리 밖에서 막는다고 했으니, 진실로 마음을 열고 성심을 보여 광직(狂直)함을 포용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뢰 같은 임금의 위엄 아래서 말을 끝까지 다하려 하겠는가. 한번 조식(曺植)의 상소에 성을 내자 초야에서 직언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계했고 간쟁하는 의논을 여러번 거절하자 조정의 의견이 있는 자들도 묵묵히 입을 다물었으니, 이것이 언로가 날로 막히고 기강이 확립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므로 근본이 굳어야 나라도 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민생의 곤궁함이 이때보다 심한 적이 없고 기강도 날로 문란해지니 참으로 염려스럽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명종 12년 1월 30일(갑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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