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비변사에서 가강에게 서계와 능침 발굴범을 요구하자고 요청하다

[조선 선조]비변사에서 가강에게 서계와 능침 발굴범을 요구하자고 요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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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부승지 최염(崔濂)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기를, ˝일본(日本)에 차인(差人)을 들여보내는 일을 입계하니, 전교하시기를 ˝적이 화친을 요구하는 것은 모두 대마도가 중간에서 한 짓이니, 그들이 가강(家康)을 칭탁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가강이 실지로 속히 화호(和好)하려는 뜻이 있다면 유정(惟政)이 돌아올 때에 한장의 글도 부치지 않고 혹 장황하게 사설을 늘어놓고, 혹은 흉악한 위협으로 공갈했겠는가. 수뢰(秀賴)와 가강 가운데 지금 어떤 적이 국사를 주관하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그처럼 말을 만들어 글을 보내면 귤지정의 꾀에 속을까 염려된다. 설사 가강이 실제로 왜주(倭主)가 되었다 하더라도 수길의 무리를 모조리 제거했으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고 그 무리가 중외(中外)에 가득 차 있다면 가강이 어린애를 끼고 군하(群下)를 호령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번에 곧바로 가강에게 글을 보내면 여러 적들이 유감을 품게 될까 싶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내 생각은 사람을 보내 정탐하여 그들의 사정을 대강 안 뒤에 처리하고자 한다. 또 한 가지 생각이 있으니, 능(陵)을 범한 적을 잡아 죽이면 참으로 의리상 통쾌하나 다만 압송하기를 기필할 수 없고, 압송하더라도 마치 금로(金虜)가 재궁(梓宮)을 송환하듯이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개 왜적은 아주 교활하여 꾀가 십배나 되어 우리는 걸핏하면 속아왔다. 이는 한 나라의 큰일이니 반복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의논하여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신들이 삼가 성비(聖批)를 받들어 재삼 봉독(奉讀)하니 성려(聖慮)가 심원하여 실로 아랫사람들이 미치지 못할 바입니다. 이번 화호를 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전적으로 대마도가 중간에서 한 짓인데, 지금 와서 조신(調信)이 죽고 의지(義智)·경직(景直)의 무리가 형세가 외로와지자 이 일로써 가강에게 잘 보여 자신을 보호하는 계책을 삼으려는 생각에서 이처럼 독촉하는 것입니다. 가강에게 있어서는 화친을 하면 뽐낼 수 있고 화친하지 않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으니, 그 마음이 이러할 뿐입니다. 가강이 이미 국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수뢰(秀賴)가 아직 살아 있다면 뜻을 잃고 곳곳에 흩어져 유감과 원한을 품고 있는 그의 무리가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이를 염려하여 항상 그들 나라가 안정되기 전에는 갑자기 사신 보내기를 어려워했던 것입니다. 다만 이 일은 처음에 이미 발단되어 여러 해 동안 미루어 오다가 이 지경에 이르러 그들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대마도(對馬島)가 독기를 부려 또 우리 변경을 소요시킬 것이니, 어찌 매우 염려되지 않겠습니까. 근일 반복하여 생각해 보고 들은 바를 참작해 보았는데, 손문욱(孫文彧)·손승서(孫承緖)의 말과 귤지정(橘智正)의 말이 대개 서로 같으니, 가강이 나라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의심이 없는 듯합니다. 사람을 보내 정탐(偵探)하여 실정을 알아내려 할 경우 문서(文書)가 없으면 대마도가 반드시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고, 다른 일을 핑계하면 꾸며댈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조(禮曹)의 글을 곧바로 가강의 집정(執政)에게 보내 그들의 본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탐문하려는 것입니다. 말을 만들 때는 곧바로 수길(秀吉)의 소위와 가강 자신이 한 말에 의거하여 하면 평적(平賊)의 무리가 보더라도 허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능을 범한 적은 만고(萬古)에 통분한 일인데, 일본과 통호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통호한다면 이는 바로 제일 먼저 따져야 할 일입니다. 더군다나 평조윤(平調允)은 대마도의 적이니 대마도가 이미 통호하는 일을 급하게 여겨 혹시라도 이 적을 아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묶어 보내라는 의논이 나오게 된 것이나, 교활한 무리들이 한(漢)나라에서 장이(張耳)를 참(斬)하는 계책 을 내는 것인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변은 무궁하고 적정(賊情)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서계 가운데 너무 드러나는 것을 혐의한다면 어제의 계사(啓辭)를 약간 수정하여 전의 계청(啓請)에 의해 시행하고, 만약 금번에 글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면 우선은 손문욱(孫文彧)으로 하여금 부산(釜山)으로 달려가 귤지정에게 ˝수길이 죽은 후에 가강은 수길이 하던 일을 모두 반대<중략>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선조 39년 5월 13일(경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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