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대마주 태수가 토산물을 바치고 서계하여 통신사가 북해로 갈 것을 청하다

[조선 성종]대마주 태수가 토산물을 바치고 서계하여 통신사가 북해로 갈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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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日本國) 대마주 태수(對馬州太守) 종정국(宗貞國)이 특별히 보낸 원무기(源茂崎) 등이 와서 토의(土宜)를 바치었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엎드려 듣건대, 장차 황화선(皇華船) 을 본방(本邦)에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낙하(落下)에서 지난 겨울에 병란이 그치었음을 아뢰었으므로, 관선(官船)이 올 것 같으면 먼저 호송(護送)하여 낙하(洛下)에 이르게 하겠다고 청하였습니다. 또 듣건대 이번 봄 3월 이래로 전산 우위문독이 기이주(紀伊州)·화천주(和泉州)·하내주(河內州)·섭진주(攝津州)의 4주(州)에 의거하여 반역(叛逆)하여서 관선(官船)이 섭주(攝州) 병고진(兵庫津)에 정박하였는데, 운항을 취하여 낙하(洛河)에 이르려면 섭진(攝津)은 서로 끼고 흐르는 곳입니다. 역반(逆叛)한 일은 5월 상순(上旬)에 이를 듣고는 곧 급사(急使)를 보내어 그 사실 여부를 구명(究明)하여서 아뢰려고 하였는데, 그 사자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6월 초 7일에 관선(官船)이 이미 돛[帆]을 당주(當州)의 좌수군(佐須郡)에 내리었고, 같은 달 18일에 닻줄을 대부(大府) 앞에 대어서 정박하였으며, 급사(急使)도 돌아와서 역반(逆叛)의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지나간 겨울에 이미 먼저 인도하여 호송(護送)하는 일을 아뢰었으므로, 관선(官船)이 온다는 말을 듣고 급히 북해선(北海船) 수척을 장식하여 상대(相待)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두 대인(大人)은 다만 남행(南行)하는 명(命)만을 받들고 북(北)으로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글로 아뢴 것이 수회(數回)에 걸쳐 남로(南路)가 옳지 못한 것을 갖추어 말하였습니다만, 양관(兩官)은 승낙하지 않습니다. 비록 상세(上世)의 근심이 없을 때라도 해구(海寇)와 산적(山賊)이 오히려 두려운데, 하물며 이제 모반(謀叛)하는 역도(逆徒)가 그 인후(咽喉)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야 어떠하겠습니까? 또 이달 2일에 편주(扁舟)가 와서 보고하기를, ‘안예주(安藝州)에 병란이 또 일어나서 바다와 육지가 이미 두절 되었다.’ 하였습니다. 그러한 형편인데 무슨 방법이 있어서 남해(南海)를 취하여 낙하(洛下)에 도달하겠습니까? 우리가 도달할 만한 길을 알면서 일부러 도달할 수 없는 길로 나간다면, 어찌 먼저 인도하여 호송(護送)하여서 충성을 귀국(貴國)에 다하는 것이겠습니까? 대저 남로(南路)는 어렵고 북로(北路)가 쉽다는 것은 양관(兩官)에게 두세 번 글을 바치었으니, 그 초고(草蒿)를 살피고 아울러 보명(報命) 각각 6지(紙)를 이제 상정(上呈)하니, 굽어보소서. 만약에 남행(南行)하는 일을 저희에게 명하신다면 진실로 존명(尊命)을 받들기가 어렵습니다.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어찌 능력이 없다 하여 저희를 죄주겠습니까? 만약에 북로(北路)로 가신다면 먼저 인도하여 호송(護送)하여서 사명(使命)을 이루게 하고, 신 또한 그 단충(丹忠)을 온전하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호군(護軍) 원무기(源茂崎)를 보내어서 아뢰니 굽어 북해(北海)로 가는 것을 따르신다면 만행(萬行)이겠습니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 7월 25일(기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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