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유구 국왕 상원이 신사랑을 보내어 내빙하고 서계를 올리다

[조선 성종]유구 국왕 상원이 신사랑을 보내어 내빙하고 서계를 올리다

분류 교통/통신/지리 > 해양문화사전 > 해양사 > 교류

유구국왕(琉球國王) 상원(尙圓)이 신사랑(新四郞)을 보내어 내빙(來聘)하였는데,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남북(南北) 만리에 바닷길이 험난하여 배로 왕래하기가 쉽지 아니합니다. 이로 인하여 여러 해 동안 빙례(聘禮)를 닦지 못하였습니다만, 성덕(盛德)을 사모하여 일찍이 하루도 서로 잊을 수 없었으니, 고명(高明)하심으로써 환히 알고 계시는 바이므로 반드시 이러한 마음을 양해하실 것입니다. 성화(成化) 14년 초가을에 표류(漂流)하는 두세 무리를 호송(護送)하여 귀국(貴國)에 돌려보내는 편(便)에 후하지 못한 토산물을 받들어 올려서 작은 정성을 표하였었는데, 물건마다 진귀한 생산품으로 보답하여 주셨으니, 이른바 훌륭한 선물로 보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보배롭게 간직하였으니, 어찌 감사하고 부끄러움을 이기겠습니까? 이제 신사랑(新四郞)을 전사(專使)로 삼고 야차랑(耶次郞)을 부사(副使)로 삼아 작은 예물을 바쳐서 정성을 나타내며 겸하여 구구한 소원을 아룁니다. 비록 신사랑이란 자는 우리나라 사람은 아닐지라도 일찍이 능히 황화(皇華) 의 아름다움을 다하여 전하(殿下)에게 도달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번에도 전사(專使)로 삼았으니, 밝게 살피소서. 우리나라는 대대로 불교(佛敎)에 정성을 바쳐서 가람(伽藍)을 짓고 금상(金像) 을 설치하고 취도 를 두어 장엄(莊嚴)과 복혜(福慧)를 오로지 하였으나, 삼보(三寶) 가운데 법보(法寶)를 갖추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여깁니다. 이 때문에 앞서 비로 법보(毘盧法寶) 1장(藏)을 구하였더니, 답서에 유시(諭示)하기를 ˝여러 곳에서 구해 갔기 때문에 이미 다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1장을 돌아오는 사신편에 부쳐 주어서 남극(南極)의 불모지(不毛地)가 불화(佛化) 에 영구히 젖게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하여 면주(綿紬) 5천 필과 면포(綿布) 5천 필을 구하는데, 이는 대개 비로법보전(毘盧法寶殿)을 창건하는 자본입니다. 바라건대,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여 주신다면 은혜를 입음이 막대하겠습니다. 자질구레한 방물(方物) 약간이 별폭(別幅)에 갖추어 있으니, 살펴서 받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끝으로 진중(珍重) 하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하였다. 별폭은 향(香) 50근(斤), 호초(胡椒) 5백 근, 계심(桂心) 1천 근, 울금(鬱金) 1백 50근, 빈랑자 1백 근, 육두구 1백근이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14년 12월 18일(정축)조.

연관목차

442/2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