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예조에서 통신사가 남해로 가는 것을 반대한 이유를 대마도 사신에게 물어 아뢰다

[조선 성종]예조에서 통신사가 남해로 가는 것을 반대한 이유를 대마도 사신에게 물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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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대마도(對馬島)에서 특송(特送)한 원무기(源茂崎)를 궤향(饋餉)할 때에, ‘도주(島主)가 지난해에 치보(馳報)하기를, 「전쟁이 이미 그쳤다.」고 하였다가 곧 이어 「남로(南路)가 통하지 못한다.」고 보고하여, 앞뒤가 저오되니, 어째서인가?’ 하고 물었더니, 원무기가 대답하기를, ‘전일(前日)에는 대내전(大內殿)이 퇴병(退兵)하였으므로 전쟁이 이미 그쳤다고 말하였으나 전산전이 3월부터 국왕(國王)과 더불어 흔단을 얽어 만들어, 물러가 남해(南海)의 요로(要路)를 보전하여 사람들이 통행하지 못하니, 통신사(通信使)의 호송(護送)이 어렵게 된 까닭으로 부득이 저를 보내어 치보(馳報)하게 하였습니다. 어찌 감히 고의로 허탄한 말을 하겠습니까? 북해(北海)는 길이 빨라 5,6삭(朔) 안에 갔다 돌아올 수 있는데, 다만 풍파가 남로(南路)에 비하여 험한 것 같으므로 먼저 배[船] 3척(隻)을 만들고서 기다렸습니다. 통신사(通信使)가 섬에 정박하고 난 연후에는, 3척으로 부족될까 염려하여 또 2척(隻)을 더 만들어 진력(盡力)하여 호송(護送)하려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묻기를 ‘삼포(三浦)에 사는 왜인은 이 또한 우리나라의 편민(編民)이니 통신사(通信使)가 데리고 가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 본도(本島)의 통신사(通信使)에게 보냈다가 돌아온 서계(書契)를 보니, 이제 탔던 역부(役夫)의 수배(數輩)를 정히 머물게 하려고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이냐?’고 하니, 원무기가 대답하기를 ‘도주(島主)는 통신사(通信使)가 반드시 남로(南路)로 돌아가려고 하므로, 중지하려고 하다가 이루지 못한 까닭으로 이 말을 하여서 그 뜻을 밝혔을 뿐이지, 진실로 이와 같이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 7월 28일(임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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