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유구국왕의 사신에게 대장경을 구하지 못하였음을 알리는 서계를 주다

[조선 성종]유구국왕의 사신에게 대장경을 구하지 못하였음을 알리는 서계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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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왕(琉球國王)의 사신(使臣) 신시라(新時羅) 등 18인이 사환(辭還)하니, 그 회답(回答)하는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조선국왕(朝鮮國王) 성(姓)·휘(諱)는 유구국왕(琉球國王) 전하(殿下)에게 봉복(奉復)합니다. 글을 받고서 나타낸 뜻을 충분히 살피었는데 겸하여 사개(使价)의 말을 듣고 체도가 안녕하심을 알게 되니 기쁜 마음으로 위로드립니다. 우리나라와 귀국(貴國)은 창해가 아득히 격(隔)하였으되, 귀국의 신사(信使)는 대대로 끊이지 않고서 빙례(聘禮)를 닦고, 이제 또 표류(漂流)한 사람들을 돌려 보내어 감격함이 깊습니다. 그러나 바닷길이 험간(險艱)하여 즉시 보사(報謝)하지 못하여 후의(厚意)를 저버리니 부끄러움이 지극합니다. 유시하였던 《대장경(大藏經)》은 일찍이 여러 곳에서 이미 다 구하여 갔기 때문에 이에 명(命)에 부응하지 못합니다만, 아끼는 것은 아닙니다. 변변치 못한 토물(土物)을 별폭(別幅)과 같이 갖추었으니, 조령(照領)하시기 바랍니다. 백세면주(白細綿紬) 10필(匹), 백세저포(白細苧布) 10필, 흑세마포(黑細麻布) 10필, 표피심 호피변 전피리 좌자 1사(事), 잡채화석(雜彩花席) 5장(張), 인삼(人蔘) 50근(斤), 청밀(淸蜜) 15두(斗), 송자(松子) 3백 근(斤), 남사피(藍斜皮) 10장(張), 유지(油紙) 10장, 백접선(白摺扇) 1백 파(把), 소주(燒酒) 30병(甁), 면포(綿布) 2백 필(匹), 면주(綿紬) 1백 필(匹)입니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 7월 27일(신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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