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유구 국왕 상덕이 경종을 보내어 내빙하다

[조선 성종]유구 국왕 상덕이 경종을 보내어 내빙하다

분류 교통/통신/지리 > 해양문화사전 > 해양사 > 교류

유구 국왕(琉球國王) 상덕(尙德)이 경종(敬宗)을 보내어 내빙(來聘)하였다. 그 서계(書啓)에 이르기를, ˝요(堯)임금 뜰의 정화(政化)와 기자(箕子) 홍범(洪範) 의 덕음(德音)으로 내 백성을 인수(仁壽)의 지역에 올려놓고 외국을 순치(唇齒)의 이웃으로 통하게 하시니, 만복(萬福) 만복하소서. 이에 성화(成化) 12년(1476)에 누방(陋邦)이 우연히 상국(上國)에 빙문(聘問)을 통하였는데 많은 은혜를 입었고, 더구나 광비의 진황 여러 가지를 회개(回介)에게 부쳐 보내셨으니, 이것은 비상한 혜택입니다. 총답(寵答)하여 존무(存撫)하신 것을 밤낮으로 잊지 못합니다. 지난번에 전하께 받들어 문주(聞奏)한 뜻은 누방(陋邦)에 칙사(勅賜)한 명신 선사(明信禪師)의 모연(募緣) 으로 창건하려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일찍이 시사(施捨)하는 마음을 열지 않으시어서 소원(素願)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년에 거듭 단개(單价)를 보내어 빙례(聘禮)를 닦고 전하께 고합니다. 대저 절을 짓는 까닭은 묘담(妙湛) 유희의 장소이고 오로지 대왕(大王)의 복리(福履)를 빌어서 영원히 만세의 기초를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높고 화려한 아름다움이 온정한 공사를 마치지 못하여 비용이 오히려 거만(鉅?에 미쳐야 성공을 볼 수 있겠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아끼고 인색한 마음을 깨뜨리시고 전시(專施)하는 문을 열어서 동전(銅錢)·면주(綿紬)·목면(木綿) 등을 싸주시어 인덕(人德)의 은혜가 멀리 미치면, 지역은 다르나 부응(符應)이 같아서 널리 조연(助緣)을 펼 것입니다. 다시 고합니다. 인각(印刻)의 좌권(左券) 을 받들어 전하(殿下)에게 두시어 부신(符信)에 합하는 것은 금후에 인원을 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래에 인호(隣好)를 닦으려면 어떻게 부신을 삼아야 할 것인지, 청컨대 회개(回介)에게 물으시어 시유(示諭)하시면 대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상국(上國) 백성 두세 사람이 타두풍(打頭風) 때문에 노를 잃고 중류(中流)에서 표류하여 누방(陋邦)의 바닷가에 표착(漂着)하였는데 빈연의 예로 호궤 하여 옷을 주고 먹이고 하여 부상(扶桑) 에 길을 빌리어 상국에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만일 다시 이 뒤로 바다에서 표류하는 자가 있으면 보호하여 구제할 것이니, 어찌 어복(魚腹)에 장사할 근심이 있겠습니까? 누방이 상국에 대하여 찬앙(鑽仰) 의 정성을 다하여 마치 중화(中華)를 우러러보는 것 같아서 구구한 하정(下情)으로 조금 보좌할 뿐입니다. 변변치 못한 토산물[土宜]을 별폭(別幅)과 같이 갖춥니다.˝ 하였고, 그 별폭에는, 호초(胡椒) 5배 근(斤), 화 3폭(幅), 절탁자(折卓子) 1개(介), 향로(香爐) 1개, 침향(沈香) 5백 근, 청자주해(靑磁酒海) 1개(箇), 사탕(沙糖) 1백 근, 야자(椰子) 10개, 감초(甘草) 1배 근, 흑시 2백 50근, 대랑피(大浪皮) 50매(枚), 청자발 2매이었다. 그 사자[使] 경종(敬宗) 등이 대궐에 나오니, 임금이 도승지(都承旨) 김승경(金升卿)에게 명하여 인정전(仁政殿) 남랑(南廊)에서 대접하였다. 경종(敬宗)이 김승경에게 준 시(詩)에 이르기를, ˝구름이 봉래(蓬萊)에 둘리어 기운이 성한데, 새벽에 예관(禮官)의 인도로 중동(重瞳) 을 배알(拜謁)하였네. 문장은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 같아 당대에는 이 분이고, 양필(良弼) 은 기(夔)와 용(龍) 같아 중국과 동일하네. 자맥(紫陌)에서 서늘한 기운을 보내니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푸르고, 단심(丹心)이 해를 따라 기우니, 이슬에 젖은 해바라기가 붉도다. 훼상(卉裳) 과 추계 로 와서 조근(朝覲)하니, 함께 황천의 성대한 은혜 가운데 있도다.˝ 하였다. 김승경이 아뢰니, 여러 승지에게 명하여 화답하게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11년 6월 7일(병진)조.

연관목차

432/2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