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승정원에 명하여 유구국 사신의 접대에 대해 의논하게 하다

[조선 성종]승정원에 명하여 유구국 사신의 접대에 대해 의논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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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承政院)에 명(命)하여 유구국(琉球國)의 사신을 접대(接待)하는 것을 의논하게 하였다. 김응기(金應箕)·강귀손(姜龜孫)·구치곤은 의논하기를, ˝지금 유구의 글을 보건대 그들의 속이는 것이 매우 분명하니, 유구국 사신으로 대우할 수는 없습니다. 교린(交隣)하는 도리(道理)는 신의(信義)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저들이 속이면서 왔으니, 우리가 의리로써 거절하지 못한다면, 이는 계책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고, 대국(大國)에서 오랑캐를 대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더구나 지난 해에 야차랑(也次郞)이 왔을 때도 조정(朝廷)에서 그 위조(僞造)한 글인 줄을 알면서도 능히 결단하여 거절하지 못하고 거추 사송(巨酋使送)으로 대우하였는데 그 관(館)에서 접대하며 요구(要求)에 응하여 주는 비용이 국왕(國王)의 사신과 매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며, 일반 왜(倭)에 비하여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올해도 위조한 글을 가지고 왔는데 이번에도 거절하지 않는다면, 다음해도 어떠한 문인(文引)을 가지고 올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정(朝廷)에서 분명히 그들이 속이는 줄을 알면서도 해마다 반드시 이와 같이 대우해 주어야겠습니까? 국가의 부고(府庫)는 비게 되고, 남쪽 지방에 공억(供億)하는 비용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진실로 마땅히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만 저들이 도주(島主)의 행장(行狀) 을 싸가지고 왔는데, 지금 만약 거절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마도 도주가 부끄러워하여 불평(不平)한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또 마침 권주(權柱)가 갈 일이 있으니, 우선 권전(權典)을 좇아서 이창신(李昌臣)으로 하여금 그들이 속이기 때문에 사신으로 대우할 수 없다는 뜻을 조목으로 진술하게 하고, 또 지금 이미 멀리서 왔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다는 뜻을 유시(諭示)하여 일반 왜인(倭人)의 예(例)로써 거느리고 오도록 하여 접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권경우(權景祐)는 의논하기를, ˝이른바 유구 국왕(琉球國王)의 서계(書契)를 보건대, 그들이 거짓으로 속인 것이 밝게 나타났는데도 의논하는 자들이 혹은 생각하기를, 먼 나라 사람이 와서 조회하는데 갑자기 물리칠 수 없다고 하면서 야차랑(也次郞)의 예(例)에 의하여 거추(巨酋)의 사송(使送)으로 대우해야 한다 하고, 혹은 생각하기를, 먼 나라 사람이 이미 우리 경내(境內)에 이르렀으니 우선 올라오라고 하여 상세히 그 이유를 힐문한 후에 다시 의논한다고 하였는데, 신(臣)의 망령된 뜻으로는 모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가(國家)에서 확실히 그 속인 것을 알지 못한다면 우선 올라오도록 하여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힐문하고 나오게 하거나 물러가게 하는 것이 오히려 옳겠지만, 그들의 속인 것이 이미 나타나서 다시 의심할 것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꼭 그렇게 합니까? 더구나 사신으로 대우하다가, 서울에 올라온 뒤에 강등(降等)하여 대우한다면 결망됨이 더욱 클 것입니다. 지난해 야차랑(也次郞)이 포(浦)에 왔을 때에 그가 속인 줄을 모르고 사자(使者)로써 대우하였다가 서울에 올라온 뒤에 그 도장[印信]을 참고하고서야 비로소 그가 속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올라왔으므로 아주 잘라서 물리치지 못하고 부득이 거추의 사자로써 대우한 것입니다. 이번은 그들이 속이는 것을 환하게 아는데, 하필이면 머뭇거리면서 거추의 사자로써 대우하여야겠습니까? 더구나 유구국(琉球國)의 사신과 거추의 사자를 접대(接待)하는 등급의 줄어드는 것이 매우 서로 차이가 없는데, 지금 만약 거추의 사자로써 대우한다면 간교하게 속이는 무리가 장차 이 거짓 문서를 싸가지고 오는 것을 본받아 해마다 올 터인데, 모르긴 하겠지만, 국가에서 언제나 거추의 사자로써 대우하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에서 관대(館待)하고 공억(供億)하는 비용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근년에 일본(日本) 제추(諸酋)의 사자가 서로 잇달아 왔으므로 그들에게 답례로 내려 주는 세포(細布)도 이미 모두 떨어져 장차 지탱하지 못할 것이니, 명분을 생각하여 폐단을 받는 것도 마땅치가 않습니다. 다만 이 무리가 대마 도주(對馬島主)의 문인(文引)을 받아가지고 왔는데, 만약 갑자기 거절한다면, <중략>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성종 25년 3월 24일(계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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