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가섭이 부처님의 법을 받은 인연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법을 받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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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인연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불본행집경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나도나촌 신수림(神樹林) 근처 다자탑(多子塔) 앞에 앉아 계셨는데,
어느 나이 많은 바라문이 지나가다 부처님을 뵙고 인사하였다.
부처님은 반갑게 그를 맞아 자신의 자리를 반분해 앉게 하고,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너에게 부촉한다.」
하였다.
대중들은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라 멍하니 앉아 쳐다만 보고 있다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그는 누구며, 무슨 인연이 있사옵기에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 열반표심을 너에게 부촉한다 하시나이까?」
「대중들아, 들으라. 이는 옛날로부터 나의 가장 아끼는 제자중의 한 사람이니라.
이 세상에서는 마가다국 왕사성 니구로다 갈파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지난 옛날에는 시기불을 섬기고 또 가섭불을 공양하여 이 세상에 나와 이렇게 만날 것을 약속하였노라.」
옛날 옛적 바라나성에 한 수도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다가라시기였다.
그는 일찍이 공부하여 연각(緣覺)의 도를 얻고 신통변화를 자유자재하였으나, 어느 해 큰 흉년이 들어 굶주림과 심한 추위로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다가라시기벽지불이 시내에 걸식하러 나갔다가 빈 바루를 들고 오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쫓아가 그를 청해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의 집은 워낙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었으므로 되 피밥을 끓이고 있었다.
시기 벽지불은 그의 성의를 물리칠 수 없어 그 밥을 반씩 나누어 먹고,
「세세에 기한(飢寒)없는 복전이 되라.」
축원하고, 신통으로 날아 높은 산을 넘어갔다.
그 가난한 농부는 비로소 세상을 살 것 같은 느낌을 느끼며,
「원하옵건대, 나도 장해에 저와 같은 도인지 되어 신통을 자제할 수 있게 해 주십소서.」
하고 발원하였다.
그러나 그 농부는 그 때(垢) 없는 부처님께 반그릇의 피밥을 공양한 공덕으로 천 번이나 넘게 천상락을 받았고 한량없는 세상에 항상 왕족이나 대성 바라문족, 거사들 집에 태어나 무수한 복락을 받고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살았다.
어느 때 가섭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는 가시국왕 흘리시의 아들로 태어나 1세에 항(恒)하여 그 부처님을 공양하니 <너는 내세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상수 제자가 되리라.> 수기하였다.
그 때 그는 그 부처님 앞에서,
「부처를 만나 성불을 기약하기 전에는 다시 오욕에 염착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맹세하였다.
그는 그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손수 다비(茶毘)에 임해 사리(舍利)를 모으고 탑을 세워 황금빛으로 장엄하고 죽을 때까지 공경 공양하였으므로 현세에는 저렇듯 황금빛의 몸을 받았고 저렇게 아름다운 심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1세의 향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부호의 집에 태어났으면서도 5욕락에 물들지 않고 저런 모습으로 불(佛)을 찾아 세계를 유랑하고 있으니 행자 중의 행자라 하였다.」
존자 필발라야나는 말하였다.
「일체를 보아 아는 자여, 존경하는 성자시여 실로 저는 오늘 이 시간을 위해서 무진 영겁을 편력하였나이다. 저는 실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부(富)와 귀(貴)를 겸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저는 그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계(家系)를 이어갈 손자가 하루빨리 보고 싶어 아름다운 여성을 간택하여 결혼할 것을 강권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욕이 싫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강권해 부모님의 뜻을 어길 수가 없어 염부단금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상을 만들어,
「이와 같은 여인이 있으면 결혼하겠다.」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고 매우 근심하였는데 마침 문사(門師) 바라문이 그 소리를 듣고 생명을 바쳐 놓고라도 그를 구해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바라문은 이렇게 꾀를 냈습니다.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이상한 노래와 춤을 추고 사람들이 모이면 그 염부단 금상(金像)을 내어보이며, 「처녀들이 이것에 공양하면 모두 그의 소원을 이룬다.」
하고, 이런 방식으로 촌과 촌, 성과 성을 지나 마침내 비야리성에 이르렀는데, 그 마을에 발다라가비리야(賢色黃女<현색황여>)라 불리우는 처녀가 금상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상(像)에 공양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므로 많은 처녀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문사는 그의 집을 알아 걸숙(乞宿)을 청하고 이튼날 아침 일찍 주인 어른을 찾아 뵙고 전후 사정을 다 털어놨습니다.
다행히 허락이 떨어져 그쪽에서도 밀사를 보내고 나에게도 선볼 기회가 있었으므로 나는 가만히 행상을 가장하고 그 집에 나아가 그 여자를 보았습니다.
과연 몸은 황금색으로 빛났고 검은 머리 횐 얼굴 깨끗한 맵시가 보름달과 같았습니다.
「당신은 혼처를 정해 놓았습니까?」
「저의 부모님께서 혼처를 정해 놓았으나 저는 5욕을 즐겨하지 않으므로 출가하여 범행 닦기를 원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이 때, 어쩌면 세상에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같은 사람이 있을까 하고 나는 솔직히 털어 놨습니다.
「당신의 남편 될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그러나 나 역시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결홍을 하기는 하되 5욕락을 즐겨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약속 받으러 왔습니다.」
「그것이라뇨?」
「결혼을 하기는 해도 몸에 살을 대지 말고 오직 형제와 같이 범행을 성취할 때까지 사는 것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바라는 원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결혼은 성사됐고 또 부모님의 마음도 충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항상 두 개의 침대를 한방에 들여놓고 각각 생활을 달리하여 결혼한지 12년이 되어도 어린애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저는 필시 병신이니 다시 여자를 얻으라.」
명령했습니다.
그 때마다 나는,
「세상에 인연이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매자락 스쳐가는 인연도 5백 생을 쌓아야 한다고 하거늘, 하물며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의 연을 맺음이야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저희들과 인연 있는 자가없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아오니 아버지께서는 너무 성화하지 마십시오.」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취첩을 연기해오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세상을 떠나시고 그 모든 가산을 저희들이 맡아 경영하게 되어 몇 년을 유지하다가 모든 것은 다 그녀에게 맡기고 저는 이렇게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다행히 일체지견(一切智見)을 가지신 부처님을 뵈오니 마음이 환희하고 몸이 부드러워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얻은 것 같고, 어두움에서 광명을 얻은 것 같으며. 가난한 사람이 복장(伏藏)을 얻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오히려 가난하고, 몸이 올바르지 못한 병신도 그러하지 못하겠거늘 어찌 팽팽한 육신과 천재(千載)의 보옥을 가지고도 저렇게 탐이 없다니 참으로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어려운 일이라 칭찬하였다.
부처님은 그의 동족 이름을 따서 그의 이름을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 부르고 곧 그에게 범행제일(梵行第一)의 칭호를 주셨다.
실로 이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제자가 된 이후로 한 번도 계율을 어겨본 일이 없으며, 항상 법행을 부지런히 행하여 모든 행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그의 깡마른 모습과 다 떨어진 누더기 옷을 보시고,
「가섭, 그대는 이미 나이 늙고 깡마른 몸이 되었으니 춥고 더움을 견디기 어려우리라.
이젠 그 옷을 벗고 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옷을 입으라. 나의 이 옷은 칼로 베어 재봉하여 몸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니 굳이 사양하지말라.」
하시고 부처님은 손수 신도들에게서 들어온 옷 한 벌을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그만 자네는 그 아란야를 떠나 나와 함께 깨끗한 신사들의 공양청을 받도록 하세.」
하였다.
그러나 기섭은,
「참으로 거룩하십니다. 세존님, 그런 저는 아란야에 있으면서 길이 아란야법(阿蘭若法=고요한 것에 있으면서 항상 선정을밖는 법)을 찬탄합니다. 또 저는 누더기를 입고 누더기의 공덕을 찬탄하나이다.
때 아닌 때 먹지 않고 한 자리에서 먹으며, 적은 것으로 만족하고 많은 것을 탐하지 않나이다.
부처로 자성(自性)을 삼고 여래(如來)로 집을 삼으며 법으로 물을 삼고 지혜로 명을 삼고 선열(禪悅)로 밥을 삼아 아무 것도 부족하고 아무 것도 넉넉치 아니함이 없나이다.」
「가섭아, 장하다 너는 무슨 이익을 보았기에 그런 법을 찬탄하고 그런 행을 즐겨하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두 가지 이익을 보았나이다. 첫째, 저는 안락행법(安樂行法=어떤 일에나 어떤 행에도 안락하는 법)을 얻었으며, 다른 하나는 후세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법을 얻은 까닭입니다.」
참으로 거룩하고 존경해야 할 스승이었다.
이 세상에 누구가 저렇듯 무욕(無欲)하고 저렇듯 자비(慈悲)한 성자가 있었겠는가?
실로 그이는 불타의 혜명(慧命)을 이을 만한 행동적 종교혁명가였고 진리의 법등(法燈)을 계승할 만한 뛰어난 존사(尊師)였다.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심은 오직 중생이 있는 까닭이라 하였다.
불(佛)을 위한 불교가 아니라 중생을 위한 불교, 이 중생을 위한 불교를 등에 업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위선불자는 없는가?
혹은 오늘도 가섭의 행, 불타의 인행을 앞세우고 중생을 괴롭히는 일은 없는가?
스스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일이로다.

<佛本行集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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