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등가의 사랑

마등가의 사랑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인연설화

• 주제 : 인연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마등가경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부처님 제자 아란이 행걸(行乞)을 마치고 돌아오다 길가에 한 젊은 소녀가 물을 긷는 것을 보고,
「미안합니다만 물 좀 먹을 수 없습니까?」
하고 말을 붙였다.
소녀는 뜻하지 않았던 젊은 남자 목소리에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그는 당시 불교 단 중에서도 명성이 높고 인물이 뛰어난 다문(多聞)제일 아란존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그 존귀한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조그마한 목소리로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리겠나이다.」
「왜 올릴 수 없다는 말입니까?」
「저는 비천한 소성(素性)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기생의 딸로 친한 업을 생계로 사회로부터 무서운 치욕과 멸시를 받고 살아 왔으므로 이 불제자의 요구에 대해서도 당연한 대답이었다.
당시 인도에는 네 계급(바라아문, 찰이, 폐사, 슈드라)이 있는데 이는 슈드라로 브라만이나 찰이에게 풀잎만 몸에 닿게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란은 힘있는 소리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인간은 그러한 귀천의 운명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귀천은 다만 사람의 인격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 교법에서는 그러한 무법(無法)은 없고 오직 모든 인류는 똑같은 벗이요, 친구입니다. 당신도 그러한 비굴한 생각을 버리고 자존심을 가지고 자신의 인격을 높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생후 처음으로 사람의 입을 통해 사람 같은 소리를 들은 소녀의 마음은 고맙고 황공하고 또 흐뭇하였다.
그녀는 한 잔의 물에 그렇게 만족하고 여유 있게 떠나간 그의 뒷모습을 눈물어린 모습으로 바라보다가 물 긷는 일까지도 잊어버렸다.
「저런 사람이 나의 남편이 된다면―」
그는 꿈 아닌 꿈을 꾸면서 자기도 모른 사이에 소리쳤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뛰어갔다. 그러나 아란은 벌써 사라지고 그의 그림자만 물결치듯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부사의 한 마법의 요술쟁이였다.
어머니의 마법은 어떠한 소원도 다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소녀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그 불같은 첫사랑을 어머님께 고백하고 어떻게 하여서라도 그이를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하였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 나의 힘으로서는 되지 않는다.
나의 마법은 일반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어도 죽은 사람이나 욕락을 떠난 사람에게는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한다.또 설사 그 성자가 내 마법에 걸려든다 하더라도 바사익왕은 세존의 독신자라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결코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마음을 진정하고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말라.」
그러나 소녀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더욱 비탄에 쌓여 울었다.
어머니는 보다 못해 마법을 부렸다.
뜰 가운데 소똥을 바르고 그 위에 흰 떼(白茅)를 두껍게 깔고 사방에 여덟 개의 물독을 놓고 108개의 사가라 꽃을 준비했다.
그리고 횐 떼에 불을 붙였다. 불꽃은 독사의 혀와 같이 넘실거렸다.
그 때 그 여인은 머리를 산발하고 사라가 꽃을 물독에 넣으면서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아마리, 비마러, 구구미 삼마청 이나바두사 빈두미거양」
하늘이여, 마여, 불의 신이여, 땅의 신이여, 내 주술을 용납하사 아란을 여기에 오게 해 주소서 하고, 원망하듯 저주하듯 주문을 외우며 애원했다.
이렇게 하자 부사의 하게도 아란은 그 주법의 마술에 끌려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정신없이 그녀의 집을 향해 들어왔다.
소녀는 미칠 듯이 기쁜 마음으로 아난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손과 입으로 그의 아름다운 몸을 만지며 흥분시켰다.
이 때 세존은 신통력으로 아란의 이 같은 모습을 보시고 곧 그 타락의 연못으로부터 구출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자기의 소망이 이루어지기 전에 너무나도 허망하게 빼앗아가 버린 부처님을 원망하면서 아름다운 꽃, 좋은 옷, 값진 영락으로 몸을 분장하고 이튿날 아침 기원정사로 찾아가 아란을 따라 다녔다. 당황한 아란은 부처님께 고유했다.

세존은 곧 그녀를 부르고,
「소녀여 너는 참으로 아란을 사랑하느냐?」
소녀는 거침없이 빙긋빙긋 웃으면서,
「예.」
하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다. 그대는 아란의 어디를 사량하는가?」
「어디라고요? 아, 저는 그 분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합니다.―아름다운 눈, 복스런 코, 부드러운 입, 맑은 목소리 그리고 그 고상한 자태…」
그는 미친 듯이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주워 삼켰다. 불타는,
「소녀여, 너는 좀더 침착한 생각으로 그를 살펴보라.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코에서는 콧물이 나며,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몸 가운데는 온 갓 구정물들이 충만해있지 않느냐?」
이렇게 부처님은 천천히 모든 감각적 괘락의 허환으로부터 참으로 동경해야 할 진리의 밑바닥까지 드러내 보여주었다. 마등가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그녀의 머리는 어느새 땅에 떨어졌고 그 아름답게 꾸미고 온 의상들은 빛을 잃고 벗겨졌으며, 어느새 그의 몸에는 성스러운 법의가 입혀져 비구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아란에게 일렀다.
「아, 아란에게는 정말로 적당한 처가 생겼다. 자, 어서 아란에게로 가라.」
소녀는 고개를 떨구고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면서,
「세존님, 저는 참으로 어리석은 여자였습니다.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연이 되어 높은 정법을 듣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하고 애심(哀心)으로 감사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 소녀는 본성(本性)비구니의 법명을 받고 교단의 한 사람으로서 성스러운 수도생활을 하였으나, 존자 아란은 자기가 마법에 걸린 생각을 하고 노심초사 매우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므로 부처님은 이런 인연으로 능엄경을 설하였다.
「세존이시여, 장로 아란은 지난 세상에 무슨 인연을 지었기에 그렇게 뛰어난 재주와 훌륭한 인물을 얻고 또 훌륭한 집안에 태어나 마등가녀와 같은 천한 여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까?」

『옛날 바라나성에 범덕왕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 가운데 희근(喜根)과 파노(姿奴)가 있었다.
희근은 항상 마음이 평등하여 뭇 사람들을 존경하고 선(善) 닦기를 즐겨하였는데 파노는 선행은 즐겨 행하면서도 사람을 차등하여 뭇사람들을 멸시하였다.
어느 날 이들이 산에 놀러 나갔다가 어떤 선인이 넓은 바위 위에 단정히 앉아 도 닦는 것을 보고,
「나도 저와 같이 훌륭한 도사가 되어 저와 같은 스승을 모시고 저와 같은 도를 얻어 저와 같은 위력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
하니 파노도 따라서,
「나도 희근과 같이 되게 항상 그이와 함께 도(度) 닦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대중아 알라. 그 때의 희근은 오늘 저 아란이고 파노는 마등가며 그 깊은 산에 도 닦던 선인은 바로 나다.
희근은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평등히 모든 생명들을 공경하고 선을 닦았으므로 왕족인 석가 집안에 태어나 뭇사람들의 공경을 받고 뛰어난 인품과 총명한 지혜를 얻어 원을 따라 나의 제자가 되었으며, 마등가는 선행은 비록 즐겨 닦았으나 마음이 평등하지 못해 천한 가정에 태어나 모든 사람들의 멸시를 한 몸에 받다가 그 원을 반연하여 아란을 만나고 또 나를 만나 불도를 닦게 된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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