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나라 왕녀와 선재왕자의 사랑

킨나라 왕녀와 선재왕자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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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본생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본설일절유부비야약사13,14

한샤라라는 나라에 두 사람의 임금님이 있었다
북쪽의 왕은 이름을 재(財)라고 하고 성(城)을 용각(龍閣)이라고 칭하여 정치를 올바르고 백성은 풍성하여 사기, 도적, 질병의 근심이 없이 소와 염소, 벼와 고구마는 도처에 가득하여 풍요하고 태평한 나라였다
그 용각성의 곁에는 갖가지 연꽃이 피어 여러 가지 새가 와서 놀았다. 큰 못이 있어 묘생(妙生)이라는 용이 살고 있었는데 시기에 맞추어 구름을 일으켜 비를 오게하고, 논밭을 적시어서 기근이라는 것이 없었다 백성은 모두 충분한 식량을 저축하여 항시 보시를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쪽의 왕은 그와 반대로 성질이 몹시 사나와 정치는 무서운 폭정이어서 하늘도 이를 노엽게 생각하는지 비가 오지 않아 땅에는 오곡이 여물지 않고 기근이 그칠 날이 없었다 백성은 이 폭정과 기근을 두려워하여 모두 북쪽에 있는 용각성으로 도망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였다
하루는 남쪽의 왕이 사냥을 가기 위해 왕궁을 나서 보니 마을마다 인기척은 없고 신묘(神廟)는 곳곳마다 황폐하여 있다
왕은 신하를 돌아다 보고 물었다
마을 주민들은 어디로들 갔느냐?
대왕님, 그들은 기근이 들어서 나라를 버리고 북쪽 왕에게로 도망갔습니다. 대왕이 화를 내시지 않는다면 그 까닭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화를 내지 않을테니 무슨 이야기든 해도 좋다
대왕님, 북쪽의 왕은 올바르게 법을 행하고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나라는 번영하고 백성은 풍부해지고 사기꾼도, 적도, 질병도 없이 많은 중과 바라문은 풍부한 보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우리 대왕님은 성질이 사납고 항상 백성을 못살게 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대왕을 버리고 북쪽의 왕에게 붙은 것입니다
이발을 듣자 왕은 한마디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그들을 이곳에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대왕님, 저 북쪽의 왕같이 자비심을 가지고 백성을 대한다면 그들은 다시 이 나라에 돌아올 것입니다
신하들은 왕에게,
대왕님, 그 나라에는 더구나 훌륭한 물건이 있습니다. 그 서울에 있는 용각성 옆에 아름답고 큰 못이 있습니다. 거기에 묘생이라는 용이 살고 있습니다 그용이 때를 맞추어 비를 내려 주기 때문에 그 나라에는 기근이란 것이 없습니다
왕은 이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어떻게 하면 그 용을 이곳으로 데리고 올 수 있을까
대왕님, 주술(呪術)에 능한 자가 기도를 올린다면 이 나라로 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신하에게 명하여 북을 치면서 전국에〈주술로 북방의 용각성에 있는 묘생용자(妙生龍子)를 우리나라로 데리고 온 자에게는 금바구니를 상으로 주겠다〉고 포고문을 냈다. 그러자 쥬다라는 주술사가 이것을 듣고 왕궁으로 가서 대신과 면회하여,
제가 한 번 그용을 불러들여 보겠습니다
하고 자청해 왔다.
대신은 기뻐하고 주술사에게 금바구니를 주자,
그것은 용을 이 나라로 데려온 뒤에 받기로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떠나갔다 그는 그 글로 용각성으로 가서 못을 관찰하고 용이 살고 있는 집을 알아내어 다시 돌아와 대신에게 보고했다.
앞으로 七일 후에는 용이 반드시 이 나라로 올터이니 제사를 올릴 준비를 갖추어 주십시오
한편 용각성의 못에 있는 용은 그 주술사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저으기 걱정이 외었다
만약 주술사의 주문에 묶여 남쪽 나라로 간다면 부모나 일가 친척과 떨어져서 환자 외롭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 7일 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고 걱정에 잠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 못 근처에 바라카, 하라카라고 하는 두 사람의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이 못에 와서 새나 고기를 잡아 생활하고 있었다. 하라카라는 사냥꾼은 머지않아 죽을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 용은 사냥꾼에게 가서 부탁해 보기로 했다.
용은 사람으로 둔갑하여 사냥꾼을 찾아가서,
하라카여 이 용각성의 사람은 누구의 힘으로 이처럼 태평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
하고 묻자 사냥꾼은
이것은 모두 대왕님의 어진 정치의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람으로 둔갑한 묘생은,
당신의 말씀대로입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원인이 있지 않습니까?
하고 말했다. 사냥꾼은,
그것은 성밖의 못에 사는 용이 때를 맞추어 비를 내려주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묘생은,
만약 그용을 누군가가 와서 데려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오.
하고 말하자 사냥꾼은
나는 그 놈을 죽이겠다.하고 대답했다. 묘생은
당신은 묘생용자를 보신 일이 있습니까.하고 묻자 그는 본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묘생은 처음으로 자기의 이름을 대고 그에게 구원을 청했다.
하라카여, 내가 바로 묘생 용자입니다. 제발 저를 구해 주십시오. 남쪽 나라의 주술사가 나를 자기 나라로 데려가려고 제사를 올릴 준비를 갖추고 七일 후에는 이곳에 옵니다. 그는 연못 주위에 가치라 나무에 말뚝을 박고 갖가지 색깔의 실을 두른 다음 주문을 외고 나를 데려갈 것입니다.
당신은 연못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그가 물을 휘저을 때 활을 쏜 다음 가까이 와 먼저 주술(呪術)을 풀고 그 다음에 그의 머리를 베어 주십시오 꼭 알아둘 일은 주술을 푼 다음 그를 죽이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주술에 묶여서 나는 죽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사냥꾼은 이 말을 듣고 기꺼이 승낙했다.
당신을 위해서도 나는 승낙하겠습니다. 더구나 이것은 용각성 안의 모든 사람을 위하는 길입니다. 어떻게 제가 승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 걱정 말아 주십시오.
그는 七일 후 연못 가게 몸을 숨기고 주술가 오기를 기다렸다. 주술사가 나타나더니 용 말한 것처럼 연못 주위에 말뚝을 막 색실을 두른 다음 연못가에 와서 물을 휘저으려고 했다. 그때 사냥꾼은 활을 쏘아 그를 마치고 칼을 빼어들고 그 앞에 나타나,
너는 이 못의 용을 납치해 가려고 하고 있지. 빨리 주술을 풀지 않는다면 목숨은 없다.
하고 나무라고 그의 목에 칼을 대었다. 그는 놀래서 주술을 풀었다. 주술을 풀자 사냥꾼의 칼은 그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용은 주술에서 풀려나자 기쁜 나머지 연못에서 뛰쳐나와 사냥꾼을 얼싸안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입니다. 제발 우리 궁전으로 와주십시오,
이리하여 사냥꾼은 용의 안내를 받아 연못 가운데 용궁에 들어가 그 부모를 만나 그 보답으로 여러 가지 진기한 보물을 얻어가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 무렵, 이 연못 근처의 숲속에서 새를 벗 삼으며 나무 열매를 따먹고 사는 선인(仙人)이 살고 있었다. 그 사냥꾼은 매일 이 선인을 찾아가 놀고 하였는데, 어느날 그는 묘생용자의 사건을 자세하게 이야기 하였다.
그러자 선인은,
그런 쓸모없는 보물을 얻어오다니, 왜 그 용궁에 있는 불공견색(不空 索)이라는 보석을 얻어가지고 오지 않았나. 이제라도 그것을 얻어오게.
그말을 듣자 그는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당장에 용궁을 방문했다. 묘생용자를 비롯하여 부모 일가친척이 그의 방문을 환영하고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갖추어 그를 대접한 다음 또 많은 진기한 보물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사냥꾼은 그 진기한 보물에는 손을 대지 않고,
보물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제발 이 용궁에 있는 불공견색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하자 용도 그 말에는 당황하며
그 보물은 금시조(金翅鳥)를 막는 무기입니다. 그것만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했지만 꼭 가지고 싶다고 간청하는 바람에 부모나 일가 친척과 상의한 끝에 마침내 그 사냥꾼에게 주기로 하였다. 사냥꾼은 크게 기뻐하며 연못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이야기는 바뀌어 이 용각성의 재왕은 왕비를 맞은지 오래 되지만 아직 뒤를 이을 태자를 얻지 못하여 항상 그것이 근심이었다. 신하들도 그것을 걱정하여 신에게 기도할 것을 왕에게 권했다. 그래서 왕은 모든 신에게 태자를 낳게 해 주십사고 기도했다. 이 기도가 효염이 있었는지 얼마 후 왕비는 임신을 하였다.
왕비는 기뻐하며 왕에게 말했다.
대왕님, 나는 대왕님의 씨를 몸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왼쪽 겨드랑 근처인 것을 보면 사내아이가 틀림없습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고 十개월 동안을 왕비를 위해서 갖은 정성을 다하였다. 달이 차서 예상했던 대로 혹공자를 낳았다. 그 얼굴이 위엄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태자를 다투어 보고자 했다. 더욱이 태자가 탄생할 때는 제천(諸天)이 북을 치면서 이것을 기뻐했다는 것이다. 재왕은 이 말을 듣고 놀라는 한편 기뻐하여 여신에게 명령하여 도성의 구석 구석에 이르기까지 청소를 하고 묘향(妙香)을 피우고 천삭을 치게 하여 모든 중과 바라문, 가난한 사람과 고독한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는 한편 특사(特赦)를 내렸다.
또 군신을 모아놓고 태자의 이름을 짓게 하였다. 군신은 입을 맞추어,
대왕님의 이름은 재(財)이오니 태자에게는 선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라고 말하자 왕도 이에 동의하여 태자는 선재하고 불리우게 되었다. 八명위 유모의 시중을 받으며 연꽃이 피어 오르듯 태자는 건강하게 자랐다.
장성하자 태자는 모든 학예와 무술을 배웠는데 워낙 총명하여서 곧 몸에 익혔다. 왕은 태자를 위해서 삼시의 궁전을 만들었다. 곧 봄, 여름, 겨울의 정원을 그 궁전의 세 방향에 만들고 태자를 궁전 위에서 때에 맞추어 창문을 열어 피리를 불고 음악을 연주하며 즐겼다.
한편 묘생용자로부터 불공견삭을 선물 받은 사냥꾼인 하라카가 사냥을 하기 위해 산정에 올라 그 산모퉁이를 바라보니 꽃피고 나무 열매가 열리고 새가 노래하는 즐거운 숲이 있고 그 곁에는 연꽃이 피고 물새가 노는 시원한 못이 있는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별천지가 있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산을 내려가 보니 한 선인(仙人)이 살고 있는데 머리도 손톱도 길게 자라고 몸에는 나무 가죽을 걸치고 고목(枯木)같이 야위어서 나무 밑 초가집에 앉아 있었다.
사냥꾼은 합장 재배하고 선인에게 말했다.
선인님 이곳에서 고행을 하신지 몇 년이 되십니까?
그러자 선인은,
사냥꾼이여,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서 고행한지 벌서 四十년이 된다.
하고 대답했다.
사냥꾼은 다시 물었다.
신선님, 그 四十년간에 뭔가 이상한 일을 보신 일이 있읍니까?
하고 묻자 선인은 곁에 있는 연못을 손으로 가리키며 위엄있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연못을 보게나 이 연못 이름은 범계(梵階)라고 한다. 많은 연꽃이 피고 많은 새가 놀고 있다. 그 물은 맑고 더구나 젖 같은 맛이 난다. 매월 十五일에는 에츠이라는 킨나라왕의 공주가 五백명의 시녀의 시중을 받으며 이 못에 와서 목욕을 한다. 그 때에는 이 세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음악을 연주한다. 숲 속의 새도 그 음악에 홀려서 노래하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다. 나도 그 음악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이다. 그렇게 해서 七일간 그녀들은 놀다가는 그것이 가장 이상한 일일께다.
이 말을 들은 사냥꾼은 묘생용자로부터 받은 불공견색을 가지고 이 킨나라 왕의 공주를 생포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달 十五일, 그는 손에 불공견색을 들고 나무 사이에 몸을 숨겨 킨나라의 공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향기를 품으며 에츠이 일행은 못가에 내리더니 옷을 벗고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사냥꾼 하라카는 때를 맞추어 견삭을 던졌다.
에츠이는 이 줄에 묶여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녀는 두려운 나머지 큰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에 놀래어 五백명의 시녀들은 에츠이를 남겨두고 모두 도망가고 말았다. 사냥꾼은 에츠이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고 그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몸에 손을 대서는 안됩니다. 나는 당신 아내가 될 사람이 아닙니다. 국왕 같으면 나를 아내로 맞을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그러나, 붙잡고 있지 않으면 당신은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않겠소.
붙잡힌 이상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만일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상투 머리 속에 있는 구슬을 빼내어 주십시오. 나는 그 구슬의 힘으로 마음대로 하늘을 날을 수 있습니다.
에츠이는 자기 상투 머리 속에 있는 구슬을 빼내어 사냥꾼에게 주었다. 사냥꾼은 왼손으로 그 구슬을 들고 오른손으로 줄을 잡아 에츠이를 앞장 세워 걸어 나갔다.
마침 그때 이 산중에 선재왕자(善財王子)가 사냥을 나와 있었다. 사냥꾼은 멀리서 왕자의 뛰어난 모습을 보고 생각하였다.
<에츠이는 왕자를 보면 틀림 없이 왕자의 도움을 받고 도망가려고 할 것이다. 차라리 이 공주를 왕자에게 바치자>
사냥꾼은 에츠이를 데리고 급히 왕자 앞에 나가 그의 발에 절하며 말했다.
왕자님. 이 여자를 바치겠나이다. 아무쪼록 거두어 주시옵소서.
선재왕자는 에츠이를 한 번 보고는 이 세상에서는 보지고 못했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사랑을 느꼈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왕자의 마음은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비처럼 또 흐르는 물이 그칠 줄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는 이 사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내 마음을 비치는 달같은 그대 얼굴, 내 마음을 쏜 번개 같은 그대 눈동자, 화살에 맞은 코끼리처럼 내 마음 흔들리네, 가자, 어서가자 우리의 즐거운 성으로,
그러자 에츠이도 선재왕자를 첫눈에 좋아하게 되어 자기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두 사람은 손에 손을 맞잡고 용각성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을 맺어준 사냥꾼은 그 공으로 막대한 논밭을 왕자로부터 받았다.
이리하여 왕자는 에츠이와 함께 삼시(三時)의 궁전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왕자는 그녀를 깊이 사랑하여 한시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녀도 왕자를 성심껏 섬기었다.
이렇게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사위국의 서다림에서 두 사람의 바라문이 용각성을 찾아왔는데 그들은 왕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한 사람은 왕궁에 들어가 왕을 위해서 국사가 되고 또 한사람은 왕자의 궁에 들어와 왕자의 스승이 되었다.
하루는 왕자의 스승인 바라문이 왕자에게 물었다.
왕자님, 당신이 왕위에 오르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자는 대답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저 바라문으로 국사를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당신을 국사로 삼겠습니다.
왕의 국사인 바라문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몹시 화를 냈다. 어떻게든 모략을 꾸며서 왕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해야겠다. 그러면 저 바라문도 국사가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몰래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마침 그때 왕이 다스리고 있는 한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왕은 토벌군을 파견했는데, 일곱 번을 보내서 일곱 번 모두 격퇴 당하고 말았다. 국사인 바라문은 이제야 좋은 기회가 왔다. 왕자를 토벌군의 대장으로 삼아 전사시켜 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왕에게 말했다.
대왕님, 반란군은 아주 강해서 아무도 그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국사여, 내가 손수 전쟁터에 나가겠다.
대왕님, 대왕님께서 출진하실 것이 아니라 왕자를 파견하심이 어떠신지요. 왕자라면 나이도 젊고 힘도 세므로 반드시 적을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국사의 의견에 따라 선재에게 명령했다.
선재왕자여, 너는 지금부터 아군의 대장이 되어 전쟁터에 나가 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선재는 기꺼이 그 명령을 받들었다. 그는 자기 궁전에 돌아와 에츠이를 보자 아버지의 명령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왕은 다시 선재를 불러 빨리 출발하라고 명령했다. 왕자는 명령을 받들고 궁중에 돌아와 에츠이의 얼굴을 보자 또 아버지 명령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왕의 국사는 이것을 알고 왕에게 말했다.
대왕님, 왕자는 에츠이의 사랑에 빠져 출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병정을 모두 집합시켜 놓고 왕자를 불러 내어 왕의 면전에서 당장 출발토록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왕은 국사의 말에 따라 군대를 전부 정렬 시켜놓고 왕자를 불러 출발을 명령했다. 왕자는 왕에게 호소했다.
다시 한 번 에츠이를 만나본 다음 출발토록 해주십시오.
그러나 왕은 그것을 거절했다.
지금은 에츠이를 만날 때가 아니다.
그러나, 왕자는 다시 애원했다.
그러면 어머님을 만난 다음 출발시켜 주십시오.
왕은 거절할 수가 없어 허락했다. 그러자 왕자는 에츠이의 방에 들어가 그녀의 상투머리에 있는 구슬을 빼어 어머니 앞에 나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 상투머리의 구슬을 소중하게 보관해 주십시오. 절대로 에츠이에게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큰 사건이 일어나서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는 그것을 돌려주십시오.
어머니는 그것을 받아 틀림없이 보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재차 뒷일을 부탁하고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군대를 이끌고 반란군의 토벌에 출발했다.
왕자의 군대가 성을 나서서 얼마동안 가다가 어느 나무 밑에 쉬고 있는데 그 하늘 위를 비사문천왕이 많은 일족을 거느리고 지나갔다. 천왕이 왕자가 쉬고 있는 나무 위에 당도하자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크게 놀래어 하계(下界)를 굽어보니 선재왕자가 나무 밑에서 쉬고 있다. 그는 왕자를 보고 말했다.
저 왕자는 보살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나는 저 왕자를 도와 주어야 한다. 왕자 대신 적군을 무찔러 주어야겠다.
천왕은 제오 야차에게 명령하여 왕자 대신 적군을 토벌토록 했다. 야차는 천왕의 명령을 받아 곧 대군(大軍)으로 둔갑했다. 그 병정의 키는 다라수(多羅樹)와 같고, 코끼리의 크기는 산과 같고, 말은 코끼리와 같아 갖가지 무기를 번쩍거리며 북을 치고 환성을 질러 적의 성을 사방에서 공격하였다. 성중에 있던 군졸들은 이 무서운 힘에 간담을 서늘케 하고 싸울 용기도 잃고 말았다. 야차군(夜叉軍)의 대장은 큰 소리를 질러 외쳤다.
빨리 문을 열러라. 그리고 선재왕자를 환영할 준비를 하라, 우물 쭈물하면 모두 죽여버린다.
성안에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말했다.
우리들은 재왕이나 선재왕자에 대해서 절대로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장에 성문을 열고 꽃을 뿌리고 향을 피우고 음악을 연주하여 왕자를 환영하였다. 선재는 한 사람의 적병도 죽이지 않고 적을 정복하고 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약간의 장병들을 이 성에 남겨두고 무사히 본국에 돌아갔다.
선재가 적을 평정한날 밤 용각성에 있었던 왕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솔개가 왕의 배에서 창자를 끄집어내 성주위를 두른 다음 왕의 몸은 보물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왕은 놀래었다. (이 얼마나 불길한 꿈인가. 이것은 반드시 왕위를 빼앗기든지 생명을 잃든지 둘 중의 하나를 알려주는 꿈임에 틀림없다.) 왕은 밤중에 잠자리에서 앉아 시름에 잠기었다. 그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려 국사를 불러 이 꿈을 해몽하라고 했다. 국사는 꿈 이야기를 듣고, (이것은 선재가 적을 평정했다는 것을 알리는 꿈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겠다. 나쁜 해석을 붙여야겠다)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 왕에게,
대왕님, 그것은 좋지 않은 꿈입니다. 왕위를 빼앗기든지, 목숨을 잃든지 둘 중의 한 가지 재난이 올 것입니다. 다만 바라문의 주술(呪術)로 그 재난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어떠한 방법인가? 고 묻자 국사는,
왕궁의 정원 안에 연못을 파고 백토(白土)로 그 바닥을 깨끗이 바른 다음 많은 짐승을 죽여서 그 피로 연못을 가득 채우고 연못을 중심으로 세 개의 길을 만듭니다. 대왕님이 친히 한쪽 길을 걸어서 연못에 들어가신 다음 다른 쪽 길로 나오시고 또 다른 길을 통하여 연못에 들어가고 반대쪽 길로 나옵니다. 그 다음에 바라문의 근본 경전(根本經典)인 네 개의 베다를 이해하는 바라문으로 하여금 대왕의 발을 핥게 하고 킨나라의 기름으로 향을 태우면 이 재난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다른 것은 다 구할 수 있지만 킨나라의 기름은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그러자 국사인 바라문이 말했다.
대왕님, 구하기 쉬운 것을 왜 구하기 힘들다고 하십니까?
국사는 어째서 구하기 쉽다는 말인가?
대왕님, 왕자의 부인 에츠이는 킨나라의 공주가 아닙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랬다.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왕자는 에츠이를 자기 목숨보다 중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국사는 끝까지 우겨댔다.
대왕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버리는 것은 한 집안을 위해서입니다.
한 집안을 버리는 것은 한 마을을 위해서입니다.
왕을 위해서 에츠이를 버리십시오. 왕자를 위해서 에츠이를 버리십시오.
나라를 위해서 에츠이를 버리십시오.
왕은 이 말을 듣고 국사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국사는 왕원(王園)에 연못을 파고 짐승의 피를 뽑아 이를 가득 채웠다. 왕자의 궁전에 있는 많은 궁녀들은 이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저 에츠이만 없으면 자기들도 왕자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에츠이는 궁녀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물었는데 모두 입을 다물고 말해주지 않았는데 한 궁녀가 모든 사실을 귀뜀해 주었다. 이것을 들은 에츠이는 놀라움과 슬픔으로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곧 선재왕자의 어머니를 찾아가 울면서 모든 사정을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에츠이를 달래며,
내가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 나서 선처를 할터이니 잠깐 기다려라.
하고 말하고 친히 대왕 앞에 나가 기미를 알아본즉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왕자의 어머니는 에츠이를 보고,
에츠이야, 네가 떠날 때가 왔구나.
하고 말하고 상투머리의 구슬과 킨나라의 옷을 내주었다. 이 때 대왕은 연못에서 나와 바라문에게 발을 핥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킨나라의 기름을 구해 오라고 명령했다. 왕의 사자가 왔을 때는 에츠이는 상투머리에 구슬을 넣고 킨나라의 옷도 가볍게 하늘로 날아간 뒤였다.
그녀는 공중에서 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뜬 세상 먼지 속에 파묻혀서
즐겁게 그곳에서 살았었는데
이제는 그 인연도 다하여서
옛날의 내 집으로 돌아갑니다.
왕은 에츠이가 바람과 같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겁이나 국사를 불러서 물었다.
에츠이는 가버렸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러나 국사인 바라문은 왕에게 말했다.
대왕님, 재난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한편 에츠이가 공중에서 생각하기를 내가 이러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모든 저 연못가의 선인이 남에게 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 선인을 만나서 원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녀는 선인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 절을 하고 말했다.
신선님, 당신이 쓸데 없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나는 사람에게 붙잡히게 되었고 사람을 유혹하게 되었으며, 끝내는 내 목숨까지 잃을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이 고운 여자였다. 왕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 손가락의 반지를 뽑아 선인에게 주면서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신선님, 만약 선재왕자가 저를 찾아오거든 이 반지를 주고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주십시오.
<내가 사는 집은 험한 산과 강을 건너지 않고는 찾아올 수 없습니다. 제발 저를 없었던 사람이라고 단념하시고 왕궁으로 돌아가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시면 나에게로 오는 길을 소상하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그 길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 길은 다음과 같았다.
이 북산의 편에 세 개의 큰 산이 있다. 그것을 넘으면 단 세 개의 산이 있다. 그것을 넘으면 대설산()이 하늘에 높이 솟아 있다. 대설산의 북쪽에 흑산(黑山)이 있고, 그 밑에 강이 흐르고 있다. 그것을 넘으면 겁달라(怯達羅), 이사다라(伊沙 羅), 금강장(金剛藏), 욕색(欲色), 오구득가(烏俱得迦), 이벌득가(伊伐得迦), 아비박나(阿鼻縛那), 피목산나(彼木山那) 등의 여러 산이 잇달아 있고 그것을 넘으면 겁나라산(怯那羅山)이 솟아 있다.
그 산밑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속에 큰 돌기둥이 서있다. 이 돌기둥에 올라 사슴 가죽을 입고 앉아 있으면 한 마리의 조왕(鳥王)이 와서 그 날개에 태워 수많은 산위를 넘어서 날아간다. 산이 끝나는 곳에서 조왕의 날개에서 내리면 사람과 염소의 모양을 한 그루터기가 줄지어 서 있다. 그 사이를 걸어가면 죽같은 물이 흐르는 힌카라라고 부르는 동굴에 들어선다.
그 바닥에는 큰 이무기가 살고 있다. 이 개천은 조심해서 뛰어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루터기 사이에는 나쁜 새가 있다. 이것들을 활로 쏘아 죽여야 한다. 터 앞으로 나가면 황소가 서로 싸우는 모양을 한 그루터기와 칼을 들고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 모양의 그쿠터기가 있다. 이것들도 쳐부셔야 한다. 또 야차(夜叉)의 상을 한 그루터기도 있다. 이것들을 그 이마 박에 쇠못을 박아야 한다. 또 맹전(猛轉)이라는 우물이 있다. 이것은 지팡이를 가지고 뛰어 넘어야 한다.
또 머리도 눈도 노란 야차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칼로 베어 버려야 한다. 또 노우키야, 하도키야, 하와니, 하도기, 시타라, 우로다니, 카사니, 아에비시야, 비다다꾸니라고 하는 강이 있는데 그 바닥에는 교룡(蛟龍)과 야차녀 성문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킨나라의 왕성이다.
에츠이는 이렇게 자세하게 선인에게 말하고 나서 하늘로 올라가 그 모습을 구름 속으로 감추고 말았다.
한편, 선재왕자는 반란군을 토벌하고 의기양양하게 용각성에 개선하였다. 아버지인 재왕은 친히 왕자를 궁전에 맞이하고 마음속으로부터 그 공을 기뻐하고 그 노고를 위로했다. 왕자는 부왕에게,
부왕님의 위력의 덕택으로 적을 평정하고 무사히 개선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평정 후의 정리도 완전히 끝내고 그곳에 약간의 장병을 남겨두고 철수했다고 보고 했다.
모든 보고가 끝나자 왕자는,
이제부터 제 방에 가서 쉬고 싶습니다.
하고 부왕에게 말했다.
그러자 부왕은,
왕자여, 오랜만에 둘이서 식사를 하고 싶으니 잠시 이곳에 남아 있어라.
하고 말하여 일어서려는 왕자를 붙잡았다.
그러나 왕자의 마음은 에츠이를 만나고 싶은 일념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저는 오랫동안 에츠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가서 만나고 싶습니다.
오늘은 나하고 함께 이곳에서 재나자. 에츠이는 내일 만나는 것이 어떠냐.
하고 말렸지만 왕자는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당장 에츠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부왕은 왕자의 한결같은 마음을 더 이상 말릴 기운도 없어 묵묵히 수심에 잠겼다. 왕자는 왕궁에서 물러나 급히 자기 궁전에 돌아와 보니 그처럼 그리워하면 에츠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는 서쪽으로 가보고 동쪽으로 달려가며 궁중을 샅샅이 찾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반 미치다시피 되어 에츠이야, 에츠이야, 외치면서 궁중을 찾아 헤맸다. 많은 궁녀는 왕자의 뒤를 쫒아다니며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였지만 사랑의 화살로 그 마음과 몸이 꿰뚫린 왕자는 에츠이만을 찾을 뿐 다른 궁녀는 뒤돌아 보지도 않았다. 한 궁녀가 왕자의 마음을 불쌍히 생각하고 자세한 사정 이야기를 그에게 해 주었다. 그리고 최후에 이렇게 말했다.
왕자님, 에츠이님은 이젠 이 궁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제발 그녀의 일을 단념하시고 궁녀중에서 그분보다 더 예쁜 여자를 고르십시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왕자는 당장에 어머니를 찾아가,
어머님 에츠이는 어디로 갔습니까. 저는 그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디가 되든 그녀 뒤를 쫓아 가겠습니다. 에츠이는 어디로 갔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졸라댔다.
어머니는 왕자를 위로하며,
왕자여, 에츠이의 생명에 위험이 닥쳤기 때문에 네가 말한 대로 나는 그를 놓아주었다.
라고 말하고는 자세하게 전후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래도 왕자는 에츠이의 행방을 묻기만하는 것이었다.
어머님, 에츠이는 도대체 어디로 갔습니까?
그는 어머니 발밑에 엎드려 울며
에츠이여 하고 외칠 뿐이었다.
이 모습을 본 어머니의 마음은 아프기만 하였다.
이 궁중에는 에츠이보다 뛰어난 여자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에츠이 만을 생각하다가는 몸도 마음도 야위고 말 것입니다.
하고 타일렀지만 왕자의 귀에는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위로를 하면 할수록 괴로움은 더해갈 뿐이었다.
왕자는 궁중에서 빠져나와 에츠이를 데리고 온 사냥꾼을 찾아가,
너는 어디서 에츠이를 만났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사냥꾼은,
왕자님, 저 산중의 연못가에 신선이 살고 있습니다. 에츠이님이 그 연못에 와서 목욕을 한다는 말을 그 신선으로부터 듣고 잡은 것이옵니다. 하고 대답했다.
왕자는 일단 궁중에 되돌아와 그 신선을 만나서 에츠이의 소식을 물어 봐야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아버지인 재왕은 왕자가 에츠이를 그리워하는 나머지 왕궁을 나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하여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여, 너는 왜 에츠이를 잊지 못하는가, 나는 너를 위해서 더 예쁜 여자를 찾아주겠다. 제발 에츠이를 잊어라.
그러나 왕자는 그것을 거절했다.
저는 에츠이가 없는 궁전에 살 마음이 나지 않습니다.
왕은 당장에 성문의 요소에 군대를 배치하고 왕자가 도망갈 경우는 사정없이 잡도록 엄중한 명령을 내렸다. 왕자는 위병이 서 있지 않은 뒷문으로 몰래 빠져 나왔다. 성을 떠나자 달이 솟아 올랐다. 그는 달을 보고 울면서 에츠이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불렀다.
별의 임금님처럼 둥근 달은 비추이고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처럼 모든 별들은 반짝이네. 푸른 연꽃 같은 에츠이의 눈을 본 사람은 없을까.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달이 비치는 들판을 그는 걸어갔다. 그러자 저쪽에서 사슴이 왔다. 그는 사슴을 보고 에츠이와 즐겁게 노닐던 때의 일을 생각했다.
그는 사슴에게 말을 걸었다.
사랑의 괴로움도 모르고 풀을 뜯어 먹고 노는 네가 부럽구나. 너는 이 근처에서 에츠이를 보지 못했느냐, 만났다면 만났다고 이야기 해다오.
좀더 걸어가니 꿀벌이 꽃에서 꿀을 따먹고 있었다. 선재는 꿀벌에게 말을 걸었다.
티없는 푸른빛과 금빛이 나는 꿀벌이여, 너는 에츠이를 보지 못했는가.
얼마큼 가니 길에 이무기가 길게 누워 있었다.
선재는 이무기에게 말을 걸었다.
눈도 입도 부릅뜨고 불을 뿜고 있는 까만 뱀이여, 내 애욕(愛慾)의 불꽃에 도달한 그와 같구나. 그러나 너같이 독은 없다. 너는 어디서 에츠이를 보지 못했는가?
얼마큼 가니 숲속에서 물까치가 고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선재는 물까치에게 말을 걸었다.
숲속에서 놀고 있는 너는 에츠이라고 하는 머리칼도 눈도 파란 연꽃 같은 킨나라왕의 공주를 보지 못했는가.
좀 더 가니 꽃이 가득 핀 무수수(無愁樹)가 있었다. 선재는 이 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에츠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구나. 네 이름은 무수(無愁)라고 해서 근심을 모르는 나무라고 하는데 손마다 벨터이니 제발 내 근심을 없애다오.
이렇게 해서 선재는 마침내 선인 앞에 이르렀다.
그는 선인에게 인사를 하고 말했다.
나무가죽을 입고 나무 뿌리를 자시는 신선님, 저는 지금 당신에게 큰 절을 합니다. 제발 에츠이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선인은 조용히 선재를 타이르며 말했다.
나무가죽을 입고 나무 뿌리를 자시는 신선님, 저는 지금 당신에게 큰 절을 합니다. 제발 에츠이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선인은 조용히 선재를 타이르며 말했다
우선 그곳에 앉으십시오. 그리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나는 저 둥근 달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푸른 연꽃 같은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에치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 이 나무 열매나 드시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물으셔도 늦지는 않습니다.
선인은 품속세서 에츠이가 맡겨 놓은 반지를 꺼내서 왕자에게 주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이 반지를 나에게 맡기고 이렇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만약 선재왕자가 저를 찾아오거든 이 반지를 전해 주십시오. 내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은 무섭고도 험합니다. 저는 없었던 사람이라고 단념하시고 왕궁으로 돌아가시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도 왕자님이 꼭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신다면 자세히 길을 가르쳐 드리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그 길을 저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단념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세히 그 길을 가리켜 드리겠습니다.
선인은 왕자에게 에츠이에게 들은 대로의 길을 일러 주었다. 그리고 나서 뱀의 독을 없애는 아카타향약과 세 개의 쇠못과 화살, 가야금과 안내하는 원숭이를 주고 여러 가지 주술법도 가르쳐주며,
히마다야산에 가면 기갈을 막고 기력을 내게 하며, 담력을 주는 약이 있으니 산에 들어가면 그것을 따서 다려 먹으십시오. 하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출발하려고 하자 선인이 다시 말했다.
왕자님, 당신은 꼭 홀몸으로 저 험한 산을 넘어서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하겠습니까? 꼭 가셔야 한다면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살아 돌아오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왕자는 결심한 듯이 말했다
신선님, 저는 꼭 에츠이를 만나야 하겠습니다. 달도 저 혼자서 저 넓은 하늘을 가고 오지 않습니까. 수왕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의 힘을 믿고 혼자 산과 들을 헤매어 다닙니다. 나에게는 동행이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바다가 있으면 그것을 넘고, 독사가 있으면 그것을 죽이고 나가겠습니다. 험한 산과 강을 넘어간다는 것은 대장부가 바라는 것입니다
그는 선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출발했다 에츠이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선인이 준 약과 주술(呪術)로 험한 산하를 넘어 무사히 킨나라왕의 성 근처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숲에 둘러싸인 웅장한 킨나라의 성이 멀리 보였다.
더 앞으로 나가니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개천이 나왔다. 왕자가 물가에서 쉬고 있을 때 수많은 킨나라의 여자들이 병을 들고 물을 길러왔다. 왕자는 여자들에게 물었다.
이 물을 길어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그러자 여자들은 입을 맞추어 대답했다
에츠이 공주님이 오랫동안 인간 세계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속기가 물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물로 몸을 씻겨드리려는 것입니다
왕자는 또 물었다.
이 별의 물을 한꺼번에 공주에게 퍼부어 드립니까. 아니면 하나 하나씩 퍼부어 드립니까
그러자 여자들은,
하나씩 하나씩 퍼부어 드립니다
그러자 왕자는 에츠이가 남기고간 반지를 꺼내어 병 속에 넣고,
이 병의 물로 맨 먼저 공주를 씻겨 주십시오.
여자들은 여기에는 필시 무언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성으로 돌아가자 그 병의 물을 맨 먼저 에츠이에게 부었다. 그러자 물과 함께 반지가 에츠이의 몸에 떨어져 나왔다.
그녀는 그것을 주어 그 병을 들고 온 여자에게 물었다.
네가 물을 길을 때 곁에 누가 있었느냐?
그 여자는 대답했다.
공주님, 훌륭한 남자 분이 계셨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자세하게 그 인상을 말했다.
에츠이는 오늘이야말로 자기를 찾아온 선재왕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그 여자에게 명령했다.
그 분을 빨리 어딘가에 숨기도록 해다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그 여자는 공주가 명령한대로 선재왕자를 숨기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 앞에 나가 무릎을 끓고 말했다.
아버님, 만약 이곳에 선재왕자가 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킨나라왕은 화를 내며 말했다.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인간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러자 에츠이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님, 만약 선재왕자가 인간이라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화를 풀었다
만약 선재왕자가 이곳에 온다면 천명의 킨나라 여자와 너와 많은 보물을 주겠다.
에츠이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 아버지 앞을 물러나자 선재왕자가 숨어 있는 곳으로 가 왕자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아버지 앞으로 데려갔다. 왕은 선재의 아름답고 사내다운 얼굴을 보고 이게 과연 인간일까 하고 놀라는 한편 의아하게 생각했다.
킨다라왕은 선재의 기예(技藝)를 시험해 보려고 높은 금기둥을 궁전 앞에 세우고 일곱 개의 북과 일곱 개의 가야금을 진열해 놓고 큰 연회를 베풀었다. 선재는 피리를 불고 가야금을 뜯고 비파를 뜯는데 그 재주는 훌륭하였다. 왕은 다음에 새파란 연꽃같이 번쩍이는 큰 칼을 선재에게 주고 궁전 앞에 세운 금기둥을 자르라고 했다.
선재가 칼을 휘둘러 이를 베자 나무 잎파리처럼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음에는 활을 들고 일곱 개의 북과 일곱 개의 가야금을 쏘자 화살은 모두 이를 꿰뚫고 말았다. 이때 공중의 제천(諸天)은 왕자의 힘을 칭찬하여 소리를 질렀다.
킨나라왕은 천명의 킨나라 여자를 성장시키고 얼굴도 모습도 에츠이와 조금도 다름없게 화장을 시킨 다음 에츠이를 그 속에 섞어서 데려 와,
이 속에서 에츠이를 찾아내라 고 말하자 선재가,
내 사랑하는 에츠이여 빨리 앞으로 나서라
하고 말하자 에츠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왕자의 목소리에 끌려 한발 앞으로 나섰다.
킨나라 백성들은 모두 왕에게 말했다.
이 선재는 뛰어난 위력과 뛰어난 용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에츠이 공주님의 신랑으로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왜 공주님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왕도 마음을 고쳐먹고 왼손에 에츠이 공주의 손을 잡고 오른 손에 금으로 만든 병을 들어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여, 내가 사랑하는 딸 에츠이를 천명의 지녀와 함께 너에게 주겠다. 아내로 맞아 한평생 변함없이 사랑해다오 또 달리 절대로 다른 부인은 얻지 말아주게.
이리하여 왕자는 에츠이의 손을 잡고 그 궁전에 들어가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즐거운 꿈에 잠기었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침식을 같이 한다 해도, 수천만리 떨어진 타향에서 낯선 킨나라 사람들 속에서 섞여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선재왕자의 마음에 고향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마침내 에츠이에게 고백하고 같이 용각성으로 돌아가자고 졸랐다
착한 에츠이는 반대하지 않았다
아버님에게 말씀드려봐서 만약 허락하신다면 나는 즐겁게 따라가겠습니다
에츠이가 부왕에게 말하자 그도 반대는 하지 않았다
에츠이여, 선재와 같이 가거라. 그러나, 인간에게는 거짓이 많다. 조심해서 가도록 하라.그리고 둘에게 많은 보물을 주었다
두 사람은 부왕을 비롯하여 많은 백성에게 이별을 고하고 수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용각성에 도착했다. 그들 일행이 성안에 들어서려고 하자 수많은 킨나라여자의 몸에서 풍기는 말할 수 없는 향기가 성안에 가득 찼다
왕은 선재왕자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성안을 구석구석까지 청소시키고 꽃을 뿌리고 향을 태우고 포장을 쳐 모든 음악을 연주해서 선재를 맞이했다. 선재는 에츠이를 데리고 많은 킨나라 여자에게 둘러싸여 왕궁에 들어갔다.
그는 킨나라 왕이 보낸 많은 보물을 부왕에게 바치고, 돌아온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나서 선재는 에츠이를 찾아 험한 산과 강을 건너간 이야기며 에츠이의 아버지인 키나라 왕이 베풀어준 호의를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부왕은 그 말을 듣고 선재의 비길데 없는 위력을 알고 당장 그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이 때의 선재왕자는 지금의 석가모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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