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태자와 석가족의 멸망

유리태자와 석가족의 멸망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인연설화

• 주제 : 인연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불본행집경

유리태자는 바사익(婆斯匿)왕의 태자였다.
바사익왕이 부처님의 교화를 입고 석가족 사람들과 혼인관계를 맺을 것을 청해왔다.
그런데 석가족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계급적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결혼을 승낙하지 않을 수도 없었으니 바사익왕의 세력은 전 인도를 통해서도 둘째가라면 서럽다할 정도로 세력이 강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석가족 사람들은 의논했다.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
「찰리(刹利)가 좋겠습니다.」
찰리는 부처님의 사촌 마하니마가 비천한 여인과 관계하여 낳은 딸이다.
그러나 매우 인물이 잘나고 또 심성이 견정하였으므로 상대편에서도 싫다 하지 않았다.
드디어 결혼식은 올려지고 그들 사이에서 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유리였다.
매우 총명하고 기세가 당당하여 남자다웠으며 의협심이 강해 누구에게도 지는 성미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유리태자가 나이 어려 외가를 찾아간 일이 있었는데 석가족 사람들은 그를 비천한 여인의 아들이라 하여 매우 천대하였다.
앉은 자리를 물로 닦고 걸어 다닌 길을 비로 쓸며 또 음식 의복도 평등하게 대접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크게 앙심을 먹게 되었다.
「결코 가만두지 않으리라. 내 크면 석가족이란 석가족은 하나도 씨를 남기지 않고 없애버리리라.」
이렇게 맹세한 그는 기회만 있으면 석가족을 멸하려 계획 세웠었다.
그러나 아버지 바사익왕이 왕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죽지 않는 한 그의 소원을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데 태자의 이와 같은 심정을 안 한 장군이 있었다.
그는 제가 가라야마대신의 조카 반둘라(장군이름)였다.
그의 삼촌 제가가라야마가 죄를 짓고 멸족을 당한 다음 오직 자기 혼자만이 남아 있어 항상 그 원한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한 때를 즈음하여 왕자의 그 같은 뜻을 안 반둘라장군은 바사익왕을 모시고 부처님을 찾아가다가 대왕께서 모든 왕장과 보배를 떼어 그에게 들리자 그것을 가지고 도망했다.
왕장은 왕의 심볼로 그것이 없이는 누구도 왕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둘라는 곧 왕장을 가지고 유리태자에게와 고하니 유리태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를 개국공신으로 칭하는 한편 곧 군대를 데리고 부왕 바사익왕을 죽일 것을 명령했다.
바사익왕은 부처님께 이르러 저 유명한 흰 쥐와 검정 쥐의 법문을 듣고 사위의 나라인 마가다국을 향해 가다가 사위성 근처에서 아들이 보낸 군대들이게 체포되어 죽었다.
참으로 비참한 일이었다.
한편 유리태자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미리부터 생각해온 석가족의 섬멸작전을 계획하였다.
부처님은 깨끗한 정관(靜觀)에서 벗어나 괴로움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란이 물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오늘은 세존의 안색이 이렇게 변해 있습니까? 성상에 빛이 없고 의복까지 색깔이 변해 있습니다.」
「머지않아 나의 친족이 섬멸될 때가 온다.」
그 때 옆에서 듣고 섰던 목견련이 말했다.
「신통으로 유리태자의 대군을 다른 세계로 내던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비라성에 금망을 치든지 합시다.」
「목건련아,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너는 숙업을 내던지고 숙업에 금망(金綱)을 칠 수 있겠는가?」
목건련은 더 말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업은 생각으로 제지할 수 있어도 이미 행위로 나타난 업은, 특히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날뛰는 아수라의 업은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리태자가 막강한 대군을 이끌고 가비라성을 향해 진군할 때 외로운 마른 나무 그늘에서 있었다. 유리태자는 깜짝 놀랐다.
그 훌륭한 세존이 그 많은 나무그늘을 놓아두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쪼이는 마른 나무 그늘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무엇 때문에 마른 나무 그늘에 서 계십니까?」
「아, 친척의 그림자는 차다.」
이 말이 떨어지자 유리태자의 가슴은 철렁하였다. 성자의 말씀은 패부를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곧 군대를 돌이켰다. 그러나 그 마음은 끝내 가시지 않았다.
세존은 존경하나 그의 가족들은 그대로 놓아들 수 없었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 진군하다 돌아오고 진군하다 돌아왔으나 네 번째에는 세존이 나타나지 않았다.
가비라성은 일시에 재가 되고 석씨종족들은 그물에 걸린 고기마냥 파득파득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세 차례에 걸친 세존의 방어로 왕자를 중심한 여러 많은 석씨들은 피난을 하였지만 그 곳에 잡혀 온 사람들은 한 사람도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대왕 마하나마는 이렇게 꾀를 냈다.
「왕이여, 나에게 꼭 한가지 부탁이 있나이다.」
「무엇인가?」
「때가 저 못에 빠져 죽을 터이니 내 몸 이물 위에 떠오를 동안까지만 성문을 열어 그동안에 도망치는 사람만은 살려주십시오.」
「좋다. 그것이야 들어주지 않겠는가?」
그러나 마하나마는 한 번 물속에 들어가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도망치자 유리왕은 사람을 시켜 물속을 더듬어 보라 하였다.
꺼내 본즉 왕은 머리를 풀어 나무뿌리에다 결박하고 죽어 있었다.
위에 세존이 가비라성을 방문하였을 때죽고 남은 사람들은 세존에게로 달려와 한없이 울었다.
이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배경으로 한 통절한 설법은 사람들의 간장을 베고도 남음이 있다.
세존이 이때 얼마나 고뇌했던가는,
「나는 지금 수미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다.」
하신 한마디로도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평생 동안 3계무비 (三界無比)의 증자(證者)로서 그 누구도 편을 들지 않던 대성 석가가 이 무서운 전쟁에 임해서는 혼신을 다해 친신(親身)에 연결된 고국의 동포를 비호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적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불에 타는 자식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듯, 사공이 물결에 휩싸인 인간을 그리 두고 보지 못하듯, 그의 마음은 온전히 보편애에서 구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고뇌는 곧 대자비의 발로요, 그의 고민은 온 인류의 슬픔이었다.
존자 난다는 비로소 자기의 출가를 강제로 인권한 세존의 깊은 뜻을 알고 또 머지않아 너는 크게 내 말을 감사할 날이 오리라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더욱 감사해 마지않았다.
만일 그가 출가하지 않았다면 그는 가법에 따라 부처님을 대신해 왕위에 오르고 왕위에 올랐으면 오늘 사촌마하나마 대왕이 당한 굴욕과 패배를 자기가 대신 당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까닭이다.
이것은 현세에서지은 빛을 현세에서 받은 인연 설화이다.

<불본행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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