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빛깔의 사슴

아홉빛깔의 사슴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본생설화

• 주제 : 본생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구색녹경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갠지스강 근처에 아홉 가지 빛깔의 털에 눈같이 흰 뿔을 가진 한 마리의 사슴이 살고 있었다. 이 사슴은 한 마리의 까마귀와 몹시 사이가 좋았다.
어느날 이 강에 빠져서 떠내려 오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겨우 나무토막을 붙잡아 머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르며,
『산신(山神)도 수신(樹神)도 제천(諸天)도 용신(龍神)도 왜 나를 구해주지 않고 죽이려 하십니까.』
하고 원망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아홉 빛깔의 사슴은 이 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는새 물 속에 뛰어들어가 물에 빠진 사나이 곁으로 헤엄쳐가,
『두려워 할 건 없소. 내 등을 타고 양쪽 뿔을 꼭 붙잡으십시오. 기슭에까지 데려다 주겠습니다.』
아홉빛깔의 사슴은 있는 힘을 다하여 기슭으로 올라와 물에 빠진 사나이를 내려놓자 기진 맥진하고 말았다. 그 사나이는 뭍에 오르자 이 사슴의 주위를 세 번 돌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덕택으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 보답으로 나를 당신의 노예로 만드십시오. 어떠한 심부름이든지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사슴은 그 말을 가로막고,
『그런것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헤어지기로 합시다. 그러나 나에게 은혜를 갚고 싶으시다면 내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만약 내가 있다는 걸 안다면 털과 뿔 때문에 나는 죽고야 말 것입니다.』
그 사나이는 여러번 절을 하고 가버렸다.
그 무렵 국왕의 부인이 꿈에 아홉 빛깔의 사슴을 보고 그 머리와 뿔이 갖고 싶어졌다. 그리고 꾀병으로 앓고 일어나지 않았다.
왕은 걱정이 되어 부인에게,
『어디가 아프오.』
하고 묻자 부인은,
『저는 어젯밤 꿈에 이상한 사슴을 보았습니다. 그 털은 아홉 가지 빛깔이고 그 뿔은 눈과 같이 희었읍니다. 나는 그 털로 방석을 만들고 그 뿔로 부채의 손잡이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 이 욕심 많은 부인의 부탁을 마음씨 좋은 왕은 쾌히 승낙하고,
『그렇게 누워있지만 말고 일어나시오. 나도 한 나라의 왕이요. 사슴 한마리쯤은 꼭 찾아서 잡아주겠소.』
하고 부인에게 약속하고 곧 전국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아홉 빛깔의 사슴을 잡은 자에게는 상으로서 나라 반절과 금 주발에 은을 고봉으로 담은 깃과 은 주발에 금을 고봉으로 담은 것을 주겠다.』
이것을 들은 그 사나이는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혜도 잊어버리고,
『드디어 운이 돌아왔다. 그 사슴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다. 상을 타자, 사슴은 짐승이다. 죽든 살든 내가 알바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명령을 돌리러 온 관리에게,
『내가 그 사슴이 있는 곳을 압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관리는 그를 데리고 왕 앞으로 나가,
『이 사나이가 아홉 빛깔의 사슴이 있는 곳을 안다고 합니다.』
하고 보고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네가 참말로 아홉 빛깔의 사슴을 잡는다면 나는 이 나라 반절을 너에게 주겠다. 꼭 주겠다.』
하고 거듭 다짐했기 때문에 그 사나이는 크게 기뻐하고,
『꼭 잡아 오겠습니다.』
하고 큰소리쳤다.
이 때 이상하게도 그 사나이의 얼굴에 한 점의 멍이 생겼다. 그 사나이는 말하기를,
『이 사슴은 짐승입니다만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군대를 내 주시지 않는다면 잡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왕은 많은 군대를 이끌고 그 사나이의 안내를 받아 갠지스 강가에 나왔다. 이에 사슴과 사이가 좋은 까마귀가 나무 위에서 이것을 보고 사슴을 죽이러 왔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나무 밑에서 자고 있는 사슴에게 큰 소리로,
『형님, 큰일 났소. 빨리 일어나오. 왕이 형을 잡으러 왔소.』
하고 소리쳤지만 사슴은 그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까마귀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사슴 머리에 앉아서 그의 귀를 쪼면서 말했다.
『형님 일어나요. 왕이 형을 잡으러 왔소.』
사슴은 깜짝 놀라 일어나서 사방을 보니 벌써 왕의 군대가 열겹 스무겹으로 에워싸서 도망갈 틈이 없다. 사슴은 각오를 하고 왕이 타고 있는 수레 앞으로 나갔다. 왕 곁에 있는 병사들은 당장에 활로 쏘아 죽이려고 하였다. 왕은 그것을 말리고 말했다.
『잠깐 기다려라. 이 사슴은 보통 사슴이 아니다. 어쩌면 신(神)인지도 모른다.』
사슴은 왕 앞에 와서 말했다.
『나를 죽이는 것을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어떤 은혜를 베풀었단 말인가.』
『나는 당신 나라 국민의 목숨을 건져준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리고 정중하게 왕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서 살고 있다는 것을 누가 말해 주었습니까?』
왕은 손가락질하며,
『저 얼굴에 멍이 있는 사나이로부터 들었다.』
사슴은 고개를 들어 찬찬히 그 사나이를 쳐다보더니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임금님, 저 사람은 며칠 전에 이 강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입니다. 나는 내 몸도 돌보지 않고 저 사람을 강에서 건져 주었습니다. 저 사람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 내 노예가 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거절하고 내가 있는 곳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 그것이 나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그대로 돌려 보냈습니다. 사람이란 이렇게도 배은망덕 하는 것입니까. 나는 저 사람을 강에서 건져주는 대신 오히려 나무토막을 건져주는 것이 훨씬 좋을 뻔했습니다.』
왕은 사슴의 말을 듣고 크게 뉘우쳐,
『우리 나라 백성들은 참으로 은혜를 모른다.』
하고 말하고 그 사나이에게,
『왜 너는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는가.』
하고 크게 꾸짖고 훈계하는 한편 그 사슴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이 사슴을 죽이자는 벌로서 그 오족(五足)을 사형에 처한다고 전국에 명령을 내렸다.
그 후로부터 온 나라 안의 사슴은 무리를 이루어 이 사슴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고 논밭을 짓밟지 않고 풀을 먹고 물을 마셔 사이좋게 살았다. 그로부터는 기후도 온순해지고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 질병도 재난도 없이 태평성세(太平盛世)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의 아홉 빛깔의 사슴은 석가모니이다. 까마귀는 아난이다. 국왕은 에치스단, 부인은 손달리, 물에 빠진 사나이는 데바닷다이다.

<九色鹿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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