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색가 묘우꼬우왕 우호태자 출생의 인연

호색가 묘우꼬우왕 우호태자 출생의 인연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본생설화

• 주제 : 본생
• 국가 : 인도

석존께서 왕사성(王舍城)이 영취산(靈鷲山)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묘우꼬우 왕이 몬세이니 성(城)에 있을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시 그 성내에 무역상(貿易商)을 경영하는 한 부호가 살고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새 아내와 더불어 화려하고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상용(商用)으로 외국엘 가게 되었다.
아름다운 아내를 홀로 본국에 남겨두고 떠나는 것은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그는 부득이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총총히 행장을 챙겨들고 외국으로 출발한 것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떠나고 나자 집안이 텅 빈 것 같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녀는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갑자기 고운 옷을 차려 입고, 몸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장신구(裝身具)로 휘감았다.
하루 세끼의 식사로 온갖 맛나고 기름진 것을 골라 먹으며, 남편이 집에 있을 때 보다 더욱 사치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이렇게 날이면 날마다 자유롭고 호사스럽게 살며 미식에 탐닉해 있는 그녀의 마음속엔 이윽고 이성을 그리워하는 정욕(精欲)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침내 이글거리는 욕정을 누를 길 없어 높은 다락에 올라가 매일 매일 그 다락 아래로 사람이 오가는 한길을 내려다보며 지나가고 또 오는 남자들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혼자 좋아하는 그런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어느 때나 다름없이 높은 다락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남자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데, 마침 그때 큰 코끼리를 타고 늠름한 풍채와 당당한 위용이 사방을 압도하는 국왕 묘우꼬우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정염의 불꽃이 삽시간에 활활 타올라 높은 다락에서 그녀는 왕을 향해 꽃을 바쳤다. 무슨 일인가 하고 깜짝 놀란 왕이 그 꽃이 떨어져 온 곳을 쳐다보았다. 높은 다락 위에 난간을 의지하여 한 아름다운 여인이 이쪽을 내려다보며 곱게 미소 짓고 있지 않는가, 맑은 눈, 자지러질 듯 가는 허리, 화사한 매무새, 과연 미인이었다.
왕은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이미 자기에게 연모(戀慕)의 정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 차렸다.
『그대가 만약 나를 사랑한다면 이곳 나에게로 오도록 하라?』
라고 왕이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만 저는 이 집안에서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갈 수 없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불초하온 저를 총애해 주신다면 비록 누추한 집입니다만 그 문으로 들어오셔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대왕은 정욕에 사로잡혀 그녀의 말을 따라 코끼리에서 뛰어 내려 혼자서 남몰래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몇 시간인가 뜨거운 정염의 순간들이 흘렀다. 왕이 이윽고 그 집에서 떠나려 자자, 그녀가 왕에게 아뢰었다.
『임금님, 저는 아마도 임금님의 혈육을 잉태한 것 같사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자신이 몸에 차고 있던 진주영락(眞珠瓔珞)을 벗어서 그녀의 손에 쥐어주며,
『그런가, 만약 앞으로 태어날 아기가 여자라면 그대가 기르도록 하고 만약 남자인 경우에는 영락을 붙여서 나에게 보내도록 하오.』
라고 말하며 이것을 신표로 했다.
그녀와의 연연한 정을 잊지 못한 채 왕은 그녀의 집을 나섰다.
순간적인 불의의 쾌락에 탐닉했던 그녀의 배는 차츰 불러오기 시작했다.
남의 눈에도 단번에 알아차려질 정도로 그녀는 임부가 된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돌연히 외국으로 가있는 남편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어떤 사연일까 하고 내심 두려움에 떨면서 봉투를 찢었다.
『당신도 물론 편히 잘 지내고 있을 줄 믿소. 나도 볼일이 거의 끝났으므로 근일간에 귀국하게 될 것 이오. 당신이 좋아할 선물을 많이 사가지고 갈테니 기대하기 바라오. 자세한 것은 만나서 얘기하도록 하고 객지에서 우선 궁금한 대로 소식만 알리오.』
라는 사연이었다.
그녀의 해맑은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그리고 편지를 들었던 가늘고 예쁜 손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지? 이 불의의 결과는 어떻게 조처하고 남편 앞에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이 문제를 사람을 시켜서 묘우꼬우 왕에게 알리기로 했다.
『저는 이미 잉태하여 만삭이 다 되어갑니다. 그런데 오늘 외국에 가 있는 남편으로부터 근일 중에 귀국한다는 편지가 왔사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사오리까?
방책도 묘안도 없이 괴로움에 지쳐 있사오니 임금님께서 하교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라고 편지를 써서 왕에게 보냈다.
이 편지를 받은 왕도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지만 한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은 즉시 편지로,
『결코 너무 심려할 것까지는 없소.
내가 방편을 써서 그대 남편의 귀국이 연장 되도록 할 것이오』
라고 회답을 주었다.
그녀는 왕의 편지를 보고 겨우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왕은 그녀의 남편에게,
『무슨 물건과 무슨 물건이 나라에 꼭 필요하니 그것을 그 곳에서 매입해 오도록 하라, 이것을 왕명으로 명령하노라!』
라고 가장 구하기 곤란한 그리고 가장 귀국 날짜가 늦어질 만한 물건들의 이름을 적어서 그 구입을 강제로 명령했다.
귀국하려던 찰나에 이와 같은 왕명이 하달되자 그는 돌아 올래야 돌아오지도 못하고 하명된 물품들을 구입하려 이곳저곳 쫓아다니며 헛된 세월을 보내면서 한숨만 짓고 있었다.
남편의 귀국이 늦어지자 그녀는 겨우 안심했다. 마침내 달이 차서 용모가 준수한 한 사내아이를 분만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대왕의 분부대로 깨끗한 상자 속에 부드러운 솜을 깔고 그 속에 대왕이 준 영락과 젖을 넣고 그 아기를 비단에 싸서 함께 넣은 다음 빨간 끈으로 이것을 묶었다.
하녀를 불러,
『이 상자를 왕궁 대문 앞까지 고이 가지고 가서 단(壇)을 깨끗이 쓸고 닦은 다음 그 위에 올려놓고 촛불을 밝혀두고 그 옆에서 지키고 있으라. 누가 와서 그 상자를 가지고 가는 것을 잘 눈으로 여겨 보았다가 돌아와 나에게 일러다오.』
라고 명령했다.
주인아씨의 명령을 받은 하녀는 밤이 되자 그 아기가 들어있는 상자를 짊어지고 왕궁 대문 앞으로 갔다. 단을 깨끗이 닦고 그 위에 상자를 올려놓은 다음 촛불을 켜놓고 누가 그 상자를 가지러 오는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길옆에서 몇 마리의 소가 으르르 모여왔다. 그 소들은 상자의 둘레를 에워싸고 쉽사리 흩어져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하녀는 이런 이상한 광경을 다만 기이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때 묘우꼬우 왕은 안라끄 부인과 함께 고루(高樓)에 올라가 있었는데 많은 소들이 상자 한 개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우연히 바라보게 되었다.
왕은 근시하는 자를 불러서,
『누군가 문 앞을 가서 보고 오라. 소가 몰려있으니 무엇이 있는지 알아오도록 하라.』
라고 분부했다.
측근의 신하가 급급히 문께로 갔다. 조사해보니 거기에 이상한 상자가 한 개 있었다. 곧 그 일을 대왕께 보고했다.
『그러면 그 상자를 이리로 가져오도록 하라.』
다시 측근의 신하가 문 앞까지 달려 나가 그 상자를 들고 들어 왔다.
곁에 섰던 부인은 그 상자를 보고,
『상감님, 그 상자 속에 있는 것을 저에게 하사하십시오.』
하고 부탁드렸다.
『꼭 그것이 소망이라면 그대에게 드리도록 하리다.』
왕의 허락이 있었으므로 부인은 근시하는 자에게 분부하여 그 상자의 봉인을 뜯었다. 그랬더니 그 속에는 놀라웁게도 어린 아기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대왕은 그 아기 곁에 놓인 진주영락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랬다.
『오, 이 아기는 내 자식이야!』
라고 외치면서 왕은 아기를 높이 들어 껴안으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시 그 아기를 부인의 손에 넘겨주며,
『그대의 친자식으로 자상하게 기르도록 하오.』
라고 말했다.
부인은 안겨주는 아기를 품안으로 끌어안으며 자신의 친자식 같은 정과 사랑으로 장차 이 아기가 무사히 그리고 늠름하고 씩씩한 왕자로 훌륭하게 성장해 줄 것을 여러 신들에게 기원했다.
『대왕께서 주신 이 아기를 뭐라고 이름 지을까요?』
『글쎄, 많은 소들이 지켜 주었다는 것을 연유해서 우호(牛護)라고 하십시다.』
왕은 다시 부인과 우호와의 모자간의 정의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해서 안라끄 부인의 이름을 우호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우호모(牛護母)라고 개명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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