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죽

피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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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본생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현우경

석존께서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어떤 곳에 루이다와 아루이다라는 두 사람의 바른 마음을 가진 아들을 가지고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도사(導師)가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 죽을 때에 그는 두 아들을 머리맡에 불려놓고,
『너희들 형제는 내가 죽은 뒤에 서로 협력하며 이 집에서 같이 살아라. 결코 따로 떨어져 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한 가닥의 실로써는 코끼리를 붙들어 맬 수가 없지마는 여러 가닥의 실을 합하면 능히 코끼리를 붙들어 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한 줄기의 갈대는 잘 타버리지만 이것을 한 다발 묶으면 쉽사리 타버리지 않는다. 너희들 형제도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 나가면, 남의 업신 여김을 받지도 않고 가업은 날로 융성하여 집을 부유하게 할 수가 있다. 이 나의 최후의 말을 저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고, 형제가 서로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간곡히 타이르고 세상을 떠났다. 형제는 슬픈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 그로부터 형제는 죽은 아버지의 유언을 잘 지키어 한 집에 같이 살면서 서로 도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서 몇 해가 지나갔다. 그리하여, 가문은 융성해졌다. 그러나 형제가 서로 아내를 가지게 된 뒤로부터는 이 집안에도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때, 아우 아루이다의 아내는,
『형님 부부와 함께 사는 것은 형님 부부에게 신경을 써야 할 일도 많고, 또 우리들이 손님이 왔을 때에 마음껏 대접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만일 분가를 하여 각자가 가업에 힘쓴다면 서로 눈치 볼 것도 없고 또한 애쓴 보람도 있어 우리들도 잘될 것이 아니요.』
이런 생각을 남편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으니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요.』
하고 남편은 아내의 의견을 거절하였다.
아내는 남편의 대답을 들었으나, 다시 널리 세상의 도리를 말하고 많은 사례를 들어서 분가하는 것이 형제 서로를 위하는 일이라고 여러모로 설명을 하였다.
남편도 결국 아내의 권고에 마음이 움직이어 어느 날, 형에게,
『형님, 나는 당분간 따로 나가 살고 싶습니다.』
하고 느닷없이 말하였다. 아우의 이야기를 들은 형은 아버지가 임종 때에 그들 형제에게 남긴 유언을 인용하고, 또 세상 일도 자세히 설명하여, 따로 사는 것을 첫째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저버리는 처사요, 또 서로의 장래를 위해서도 불리하다고 역설하여 그것을 거절하였다.
형에 말을 들으면 거기에 도리가 있으므로 아우는 일시 분가를 중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우의 아내는 남편에게 그 뒤에도 누누히 따로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였다. 아우는 다시 형에게 따로 살기를 청하였다.
형은 아우의 뜻이 매우 강경함을 보고,
『그렇게까지 네가 희망한다면, 아버지의 유언에는 어긋나지만 따로 사는 것도 부득이한 일이다.』
하고 마침내 허락을 하였다. 그리하여 형제는 재산을 둘로 나누어 각각 따로 살게 되었다. 지금까지 형 밑에서 옹색한 생활을 하던 아우 부부는 마치 장에서 풀려나온 새 마냥 비로소 맛보는 자유를 몹시도 기뻐하여, 마음 내키는대로 멋대로 하여, 마침내 방종해져서, 매일 같이 친구를 집에 불러다가 술을 마시고, 그야말로 멋대로의 생활을 계속 하였다.
그 때문에 분배받은 가산도 三년이 못되어 탕진해 버리고 무일푼의 가난뱅이가 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형네 집에 가서 그 궁상을 호소하고 구조를 청하였다. 형은 아우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몇 만원의 돈을 주어 아우를 구해 주었다.
그러나 노는 것 밖에는 즐거움을 모르는 아우는 그 큰 돈도 얼마 안가서 다 낭비해 버리고 세 번째 형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번에도 형은 얼마쯤의 돈을 주었고 그 뒤에도 몇 번인가 도와주었지만, 아우는 돈을 물쓰듯하여 형에게 가서 조르기를 여섯 번이나 하였다. 이제까지 형은 六백만원이라는 많은 돈을 아우에게 주었다.
아우는 그래도 뉘우침이 없이 일곱 번째 구조를 형에게 청하였다. 그 때에 형은,
『너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몇해도 못가서 나누어 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그 뒤, 나는 전부 六백만원의 돈을 네게 주었는데 그것도 오히려 부족해서 또 도와 달라고하니 철면피(鐵面皮)도 유만 부동이로구나.
그러나 이번까지만은 다시 백만원을 주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응하지 않을 터이니 또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라. 너도 마음을 좀 고쳐먹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이 어떠냐?』
하고 나무랐다 형의 말에 아우는 뉘우치면 준 돈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고, 이제서야 겨우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나 아우 내외는, 이에 마음을 고쳐먹고, 그 몸을 삼가고, 씀씀이는 절약하고 가업에 전심 전략하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하루하루 가문을 만회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형은 웬일인지 그 후 불행의 연속으로, 그렇게도 많은 돈을 가지고 온 나라에서도 이름 높았던 그 재산도 모조리 탕진하여 이제는 그날그날의 생활도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할 수 없이 형은 요즘 매우 경기가 좋아진 아우 아루이다의 집을 찾아가,
『아루이다야, 나도 해마다 들어닥친 재액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여 지금은 그날그날의 생활조차 곤란하게 되었다. 어떻게 좀 도아 줄 수는 없겠느냐.』
하고 부탁하였다.
풀이 죽은 형의 모습과 그 애원을 들은 아우는 벌컥 성을 내며,
『형님, 집이 가난하게 될 턱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도 꼼꼼이 꾸려 나갔는데 말입니다. 끼니때인데도, 오랜만에 찾아온 형에게 식사 대접도 하려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아우의 매정한 말과 태도에 접한 형은 이것이 혈육지간인 형에게 대한 아우의 태도일까 하고 스스로 놀라, 별 수 없이 아우의 집을 나와 길을 걸으면서 여러모로 궁리해 보았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뭐니뭐니해도 은혜를 모르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현재 피를 나눈 형제까지도 은혜를 저버렸으니 남남끼리야 말해 무엇하리.』
이렇게 생각하자 세상이나 인정 따위는 전연 믿고 의지할 것이 못된다고 깨닫고, 숫제 출가를 하여서 배은망덕한 무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버리는 것이 낫다 하고 그 자리에서 집을 버리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고요히 앉아서 생각하기 수년에 드디어 고행(苦行)의 보람이 나타나 미혹이 일시에 풀리어 성자(聖者)가 되었다.
영고성쇠(榮枯盛衰), 무상(無常)한 세태를 달관하고 드디어 성자가 된 형 루이다는 몸도 마음도 모두 깨끗하게 되어 가지고 성안에 들어와서 거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년 후, 기근이 그 나라를 엄습하여 사람들은 굶주림에 신음하였다. 그래서 루이다 성자는 걸식할 집도 없어 고생을 하게 되었다. 한 때, 욱일승전(旭日昇天)의 기세로 가운이 벋어나가던 아우 아루이다도 점점 가난해져, 더욱이 대 기근의 재난을 당하고부터는 제대로 끼니를 잇지도 못하고, 날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그것을 피와 바꾸어다가 집안 식구가 입에 풀칠을 해나가는 곤경에 빠졌다.
아루이다는 어느 날, 전과 같이 산으로 가서 땔감을 해 가지고 그것을 장에 팔러 가는데 도중에서 위의를 갖춘 한 성자를 만났다.
보는 그 쇠바리에는 아무 것도 베풀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몹시 동정하여,
『만일, 나와 함께 우리집에 오면 약간의 공양이라도 할 것인데.』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지나가려고 하였다. 벌써 그 마음을 꿰뚫어 본 성자 루이다는 그의 뒤를 따라가 그집 문앞에 섰다. 이것을 본 아루이다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어서 어서 하고 불러들여 피죽을 쑤어서 제손으로 성자에게 공양하였다.
공양을 받은 성자는,
『공양은 고맙게 받겠읍니다마는 이 피죽을 내가 다 먹어 버리면 당신이 굶을 터이니, 이것을 받아 드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아니올시다. 우리들 속인에게는 끼니때에 제한이 없으므로 오늘 저녁에 안먹어도 언제든지 먹을 수가 있으나, 성자에게는 하루의 끼니때가 정해져 있으니 사양 마시고 잡수셔요.』
『모처럼의 후의, 고맙게 받겠습니다.』
성자는 공양의 피죽을 다 먹고 나서, 이렇게 기근이 심한 때에 자기 먹을 것도 모자라는데, 자기 처자에게도 안주고 자기에게 공양한 그 정성에 감사하여, 조화를 부리어 그이 마음을 즐겁게 해 주려고 공중으로 날아 올라가 몸에서 물, 불을 뿜는 등의 가지가지의 조화를 부리고 다시 그의 앞에 앉았다.
『무엇이든지 당신의 소망이 있거든 말해보시오. 변변치 못하나마 그 소망을 성취해 드릴 터이니.』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성자의 조화를 목격하고, 마음에 기쁨을 느끼고 있는 차에 이 친절한 말을 듣고 더욱 기뻐서, 성자 앞으로 나아가, 충심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보건대, 모두가 다 재물을 구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나도 세상의 많은 재물을 얻어, 이 가난한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마음껏 베풀어 주고 싶습니다. 또 앞으로도 다시 성자를 만나 모든 마음의 번뇌를 떼어 버리고, 깨달음을 얻어, 조화를 체득하고 싶습니다.』
하고, 아루이다는 대답하였다.
『그 숭고한 소망이 꼭 이루어질 것을 기약합시다.』
하면서 루이다 성자는 깊이 사의를 표하고 자기 집을 돌아왔다.
그 이튿날, 아루이다는 전과 같이 산에 올라가 땔감을 베다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달아나는 토끼를 쫓아가 낫을 던졌더니, 토끼는 땅위에 쓰러졌다. 좋아라고 토끼를 잡으려 하니 그 죽은 토끼는 변하여 송장이 되어, 느닷없이 아루이다의 등 위로 올라갔다.
아루이다는 이 불가 사의한 일에 깜짝 놀라 등 위의 송장을 떼어 버리려고 애를 썼으나, 떼어 버릴 수가 없었다. 함께 온 아내의 힘을 빌어 떼어버리려 했으나 그래도 떨어지지가 않았다. 부부는 무슨 조화인가 하고 곰곰 생각하다가, 해가 지기를 기다려 옷으로 등 위의 송장을 덮어서, 업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랬더니 그 송장은 부부가 돌아오는 도중에 등에서 저절로 떨어졌다. 송장이 땅에 떨어지더니 이번에는 염부단금(閻浮檀金)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그 단금은 빛을 발하여 근처의 집들을 두루 비추었다.
이 기적적인 사건이 입에서 입으로 다음 다음 전해져서 마침내는 이 나라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왕은 곧 신하를 보내어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게 하였다. 사자가 그의 집에 와 보니 단금이라던 것이 송장으로 보였으므로 그는 소문과 사실이 아주 다른데 놀라, 돌아가서,
『염부단금 운운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보기에도 흉한 송장입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왕은 다른 사람을 보내어 다시 조사하게 하였더니, 그 사자는
『황금입니다.』
하고 보고하였다. 보고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왕도 이상히 여겨 거듭 사람을 보내어 조사하기를 일곱 번이나 했으나, 아직도 그 보고들은 한결 같지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왕 자신이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가 보았더니, 그 송장은 오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왕은 아루이다를 보고,
『너는 이 송장을 무엇으로 보느냐?』
하고 물었다.
『이것은 송장이 아닙니다. 진짜 황금입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그 황금을 조금 떼어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것을 손에 들고 보니, 진짜 황금이었으므로,
『너는 어떻게 해서 이 황금을 얻었느냐?』
하고 그 까닭을 거듭 물었다.
이루이다는 이 기적적인 사실을 사실 그대로 왕에게 여쭈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언젠가 어떤 성자에게 피죽을 한 그릇 즐거이 공양한 선과(善果)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덧붙였다. 아루다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너는 착한 일을 하였다. 그 성자를 만나 큰 이익을 얻게 된 것이다. 나는 너와 같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만나 참으로 기쁘다. 어쩌냐 나의 나라 대신이 되어 주지 않겠느냐? 대신이 되어서 나라를 위하여 한번 힘써 주기 바란다.』
하고 아루이다의 선행을 칭찬하고 그를 대신으로 삼았다.
시골의 한낱, 나무꾼이 성자에게 피죽 한 그릇 베풀어 준 탓으로 그 위대한 공덕으로 말미암아 한 나라의 대신으로 영달한 것이다.

이 아루이다라는 나무꾼은 지금의 아니룻다(阿耶律)이다.

<賢愚經第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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