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노

소서노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처세(處世)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이전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편집부 ()
• 내용 :
소서노는 계루부를 비롯한 다섯 부족의 연합형식으로 나라가 이루어진 압록강변 졸본부여왕 연타발의 둘째공주로 태어났다. 아들이 없었던 연타발은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소서노에게 여제(女帝)수업을 시켰다. 그곳의 오녀산성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졸본부여의 여성들은 원래부터 기개가 대단하였다. ‘오녀산성’이란 불과 다섯 명의 여성이 적군 500명의 물리쳤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서노는 처음에 해부루의 서손 우태(優台)에게 시집을 가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으나, 우태가 죽자 곧 졸본으로 돌아와서 홀몸으로 지냈다. 이 때 그녀의 나이 29세였다.

이 때 엄수의 자라 떼와 고기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동부여 왕 금와의 아들 대소왕자의 추격병을 따돌린 21세의 주몽이 소서노가 있는 졸본부여로 피신해 왔다. 즉 당시의 주몽은 소서노의 땅 한쪽에 있는 비류수 가에 피신해 온 도망자의 신세에 불과했던 것이다. 겨우 오이, 마리, 협보 세 사람만 거느리고 낯선 땅으로 온 주몽에게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여인과의 정략적인 결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주몽은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소서노에게 접근을 했고,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했다. 주몽의 아내가 된 소서노는 주몽의 개국(開國)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기원전 37년 오녀산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했다. 건국의 모든 자원을 가지고 있던 소서노가 도망자 주몽과 결혼한 이 해를 고구려 건국의 해로 정한 것만 보아도 실질적인 고구려 건국의 주체가 소서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주몽은 소서노를 왕비로 삼아 극진히 대했고, 그녀의 첫 남편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도 친아들처럼 여겼다. 비록 소서노가 자신보다 여덟 살 많은 연상의 여인이었지만, 주몽은 소서노를 극진히 사랑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19년 동부여에서 주몽의 첫부인 예씨와 친아들 유리가 찾아오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주몽은 왕의 자리에 있기는 하였으나, 소서노의 졸본부여에서 고구려를 건국하였으므로, 고구려는 소서노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소서노는 비록 왕이었지만 도망자 출신으로 지지기반이 전혀 없었던 주몽을 축출시키거나, 또는 그 다음 왕위 계승권을 자기의 아들 비류나 온조에게 얼마든지 줄 수 있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서노는 내부 다툼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 즉 소서노는 오녀산성에 고구려를 세워 19년간 운영해오던 주도권을 주몽에게 넘겨주고, 두 아들 비류와 온조, 그리고 열 명의 신하와 그녀를 따르는 백성을 데리고 새로운 건국지를 찾아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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