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로

김승로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처세(處世)형

• 갈래 : 전설
• 시대 : 고려
• 신분 : 기타
• 지역 : 기타
• 출처 : 한국구전 (5,55)
• 내용 :
고려말엽 몽고가 개성까지 쳐들어와 고려왕이 문무백관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신을 가게 되었다. 천안을 거쳐 내려오다가 전의 북방 행정리에서 공주 쪽으로 갈 것인가 전의를 거쳐 전동, 조치원 방면으로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한 신하가 “전의 쪽으로는 산이 험하나 삼십 리 정도를 내려가면 평야가 있고, 그곳에서 수확한 곡식을 얻어 군인들에게 밥을 배불리 먹여 몽고군을 격퇴시킬 수 있으니 그 쪽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고 진언하였다. 고려왕은 그 말을 따라 전의 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왕의 일행이 전의 쪽으로 이십 리 정도 내려왔는데도 평야가 없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대좌고개’ 쪽에 이르러 군신회의를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평야가 있는지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국사봉’이라는 봉우리에 올라가 망견(望見)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발이 날래고 산을 잘 타는 사람을 뽑아 보내었지만 안개와 운무가 잔뜩 끼어 볼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더 남쪽으로 걸어가다가 ‘벼르재’고개를 넘을 때 쯤 한 무리가 이쪽으로 가자고 진언한 신하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자고 벼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칼거리(걸거리)’에 가서는 결국 그 신하의 목에 칼을 씌웠고, 조금 더 가서 ‘붉은덕’에 이르러 역적으로 몰아 죽이기에 이르렀다. 죽기 전에 그 신하는 여기서 불과 오리를 안 가게 되면 평야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는 충신을 죽였다고 탄식할 것이라고 유언을 했다. 신하의 말대로 쭉 가다 보니 미호천 평야가 있었다. 민가에는 곡식이 많아 군인들을 배불리 먹여 몽고군에 반격을 할 수 있었다. 왕이 다시 돌아오다가 신하가 죽은 ‘붉은덕’에 이르러 그 신하가 충신이었음을 깨달았고 충신을 죽였다 하여 ‘붉은덕’이라 이름 붙였다.

신하의 시신도 다시 거두어 상여를 개성으로 모시고 올라갔는데 가는 중간에 개미고개에 다다라서 명정(銘旌), 공포(空砲)가 휘날려 국사봉 쪽으로 내려왔는데 거기 사람들을 시켜 가보니 일광지지(日光之地)가 있어 거기에 고려의 장법으로 묘를 썼다. 그 묘가 강릉 김씨의 김승로 장군의 묘라고 전해지는데 현재의 사적과 가계에 내려오는 내용과 맞지는 않지만 군신회의를 했던 ‘대자고개’나 역적으로 죽이자고 벼른 ‘벼르재’고개, 역적으로 몰아 목에 칼을 씌운 ‘칼거리’, 충신을 죽인 ‘붉은덕’등 지명과 결부된 사실이 전설로 남아 오늘날 전하고 있다.

연관목차

886/1461
현실적인물형
처세형
김승로 지금 읽는 중
현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