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랑

죽지랑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도량(度量)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
• 신분 : 관료
• 지역 : 영남
• 출처 : 삼국유사 ()
• 내용 :
효소왕 때에 죽지랑이라는 화랑의 대표가 있었는데, 그 휘하에 득오실이란 한 화랑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성실하던 득오실이 열흘이 지나도 보이지 않자 죽지랑은 그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 어머니 말이 “모량부의 관리 익선이 우리 아들을 부산성 창고지기로 이미 명해서 급히 가느라 미처 화랑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갔습니다.” 죽지랑은 이에 득오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오겠다며 화랑 137명을 이끌고 득오실을 찾아갔다. 부산성에 도착해보니 득오실은 익선의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득오실을 만난 죽지랑은 가져간 음식을 함께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 죽지랑은 익선을 찾아가 득오실에게 휴가를 주어 함께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하지만 익선은 거절했고, 마침 간진 관리가 벼 서른 섬을 운반하다 이 모습을 보고 죽지랑의 마음에 감동하여 벼 서른 섬을 익선에게 주면서 청을 들어 달라 했다.

하지만 익선이 거절하자 사지 벼슬을 하고 있던 진절의 말 안장을 얹어 주자 익선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이에 화랑을 관장하던 관리 화주가 이 얘기를 듣고 익선의 옹졸함에 화를 내며 익선을 잡아들이라했다. 익선은 겁이 나서 도망가 버리고 대신 그의 큰 아들이 잡혀왔다. 화주는 익선의 아들에게 성 안에서 목욕하는 벌을 내렸고, 때는 동짓달이라 결국 익선의 아들은 얼어 죽고 말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효소왕은 모량리 출신의 관리들은 모두 내?고 다시는 관직에 오를 수 없도록 명했다. 왕은 간진을 칭찬하여 그 자손을 마을을 통괄하는 호장으로 삼아 표창했다. 또한 죽지랑에게는 이와 같은 얘기도 전해져온다. 죽지랑의 아버지는 진덕여왕때의 술종공이었다.

그가 삭주(지금의 춘천) 도독사로 임명되어 갔는데, 때는 나라에 난리가 나던 때라 기마명 3천여명이 그를 호위하여 가게 되었다. 일행이 죽지령이라는 고개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나와 고갯길을 닦고 있었다. 술종공은 이를 보고 감탄하였고, 거사 역시 술종공의 위세에 반하여 서로 강한 인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술종공이 부임한지 한 달 된 어느 날, 꿈에 거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부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술종공이 이상히 여겨 거사의 안부를 알아보게 했는데, 바로 그 꿈을 꾼 날 거사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술종공은 “아무래도 우리 집안에 다시 태어나려나보다.” 하고 죽지령 고개 북쪽 봉우리에 장사를 지내고 돌미륵 하나를 무덤 앞에 세워주었다.

술종공 부인은 그날부터 태기가 있더니 아들을 낳았다. 그리하여 아이 이름은 고개에서 따와 죽지라 하였고, 죽지랑은 자라서 4대에 걸쳐 재상을 역임하며 나라의 큰 인물이 되었다. 화랑 득오실은 이런 죽지랑을 기리며 노래를 지었는데, 간 봄을 그리워함에/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구나/아름다움 나타내신/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고 하는 구나/눈 깜박할 사이에/만나 뵈올 기회를 지으리다./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까 ./이 노래를 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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