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

양녕대군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처세(處世)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조선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호
• 출처 : 김선풍 (231)
• 내용 :
양녕대군은 태종대왕의 첫째 왕자로 글을 잘 짓고, 글씨를 수려하게 썼다. 양녕대군은 일찍 이 세자에 책봉되었지만 태종이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전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미친 체하여 해괴한 행동을 저질렀다. 양녕대군은 세자 책봉이 되지 않자, 둘째인 효령대군이 세자가 되려고 아버지께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을 알았다. 양녕대군은 효령대군이 미워서 발길로 걷어차며 “충녕을 모르냐!”고 하였다. 이에 효령대군도 깨닫고 절에 들어가 북만 치며 살았다. 효령대군이 절에서 치던 북은 찢어지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부드러우면서도 찢어지지 않고 질긴 북가죽을 ‘효령대군 북가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양녕대군은 해괴한 행동만 거듭하다가 종내에는 폐립되고 말았는데 자유로운 몸이 되자 전국을 유랑하며 시를 짓고 살았다. 그중 어느 절에서 지은 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산하조작반(山霞朝作飯) - 산에 낀 안개는 아침밥을 짓고 /나월야위등(蘿月夜爲燈) - 넝쿨에 걸린 달은 밤에 등잔불이 된다/ 독숙고암하(獨宿孤岩下) - 외로이 서 있는 바위 밑에서 혼자 자니/ 유존탑일층(唯存塔一層) - 탑은 한 층만 남아 있다./남대문에 걸려 있는 숭례문이라는 현판도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고 전한다. 이 현판은 임진왜란 때 떨어져 없어졌는데 다른 사람이 새로 현판을 써 달려고 하면 떨어지기를 반복해서 결국 달지 못했다. 그런데 광해군 때 청파 배다리에 있는 웅덩이에 서기가 비추어 파 보았더니 양녕대군이 친히 쓴 숭례문 현판이 나왔기에 이를 달았더니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숭례문에 달려있는 현판이 양녕대군이 쓴 그 현판인데 훌륭한 사람이 쓴 훌륭한 글씨는 신기한 영검이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