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냥짜리 점을 본 부자

천냥짜리 점을 본 부자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처세(處世)형

• 갈래 : 민담
• 시대 : 시대미상
• 신분 : 관료
• 지역 : 호남
• 출처 : 김균태 (2357)
• 내용 :
옛날에 전라도에 부자가 살았다. 부자는 장부로 잘났는데 벼슬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한이 되어 재산을 전부 모집해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가서 세도하는 대감의 집에 돈을 바쳐 가면서 벼슬자리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지만 그 대감은 벼 천 석을 주었어도 미관말직 수령 방백 하나를 주지 않았다. 할수없이 다시 집으로 내려오다가 수원쯤에서 “점이 맞으면 삼천 냥, 안 맞으면 받지 않음.”이라는 방을 보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점을 보러 갔다.

점을 봐주는 참판이, “‘봉황산하 계월침(봉황산 아래에 계월이 잔다.)’, ‘배면붕반 원무심’ 이 두 글을 언제든지 잊지 말아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이제 이 길로 서울로 올라가면 당장 벼슬할 것이오. 그래, 후일에 이 점이 맞거든 삼천 냥을 가져오시오. 안 맞거든 그만 두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포은은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 대감 집에 다시 들어갔다. 부자를 본 대감은 마침 잘 왔다고 하면서, 어떤 고을에 군수 자리가 났으니 가보라고 하였다. 부자가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자 대감은 그 고을 인심이 좋지 못하고 아전이 사나워 군수의 치장더미를 잘 턴다고 일러주고 보냈다.

군수가 된 부자가 들은 얘기가 있어 그 마을 부임 전에 첫 공사를 하는데 형틀과 일곱방 관속과 형리를 부르고는 형틀을 갖다 놓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호장에게 장부를 가지고 오라고 하여 전부 조사해 문서와는 맞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는 호장을 형틀에 잡아매게 하였다. 그리고 국고를 횡령한 죄를 물어 호장을 때리게 하니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러자 군수는 그 다음 책임자를 형틀에 묵고 빈 국고를 채울 때 까지 치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전들이 자신들이 횡령한 돈을 다시 다 채워 놓을 테니 제발 살려달라고 와서 빌었다. 그러자 군수는사흘 안에 채워 놓으라고 하고 형틀을 치웠다. 그 뒤 사흘 동안 문서의 숫자와 꼭 맞게 국고가 채워졌고 감사 일 년 동안, 정치를 잘하여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부자를 억제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 군수는 다른 군으로 옮겨가도 똑같이 선정을 베풀어 가는 곳마다 선정비가 세워졌다.

그렇게 한 일 년 동안 여섯 고을을 돌아 다녔다. 이렇게 선정을 베푼다는 소문이 조정에 들어가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그냥 둘수 없다며 충청감사 자리를 내렸다. 그래서 충청도에 감사로 부임하여 몇 해 동안 선정을 베푸니 충청도에는 복잡한 일도 없고 백성들이 회화열풍 부르며 잘 지냈다. 하루는 심심하여 동헌에 앉아 발바닥을 쓰다듬고 있었다. 봄날이 되어 날이 따뜻하여 글을 읊고 앉아 있는데, 당나라 양귀비보다 예쁘고 월선이보다 예쁜 소복을 입은 이십 넘은 여자가 들어왔다. 그 여자는 감사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며 묵화 하나를 그려 주겠다고 하였다. 감사가 하인에게 말하여 족자와 먹을 가져오게 하자 여인이 먹을 갈아 가지고 붓을 들어 묵화를 그리는데 그 필적이 참으로 고명하였다. 감사가 그 재주가 인물보다 훌륭하고 뛰어나다고 칭찬을 하고 바둑도 둘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조금 할 줄 안다고 하자, 또 노래와 춤도 할 줄 아냐느고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또 흉내 정도를 낼 줄 안다고 하였다.

감사는 그 여인이 기특하여 주안상을 내어 대접하고, 술에 취해 바둑을 두게 되었다. 이렇게 바둑을 두다보니 밤이 깊어져 시간이 삼경에 다다르게 되었다. 감사가 생각해 보니 이미 삼경이 다 되어 이 여인을 데리고 자던, 그냥 보내던 사람들이 같이 잤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인에게 어차피 같이 잤다고 소문이 날 것이지 동침을 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여인이 허락하고 함께 동침하게 되었다.아침에 감사가 일어나 여인의 이름을 물으니 여인은 계월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공주 뒷산인 봉황산하에 계월이와 같이 잔 ‘계월침’이라 한 것이다. 포은이 그 침자를 보니 베게 침이라고도 하고 잘 침이라고도 하였다. 바깥자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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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