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벽골제와 단야낭자

김제벽골제와 단야낭자

분류 문학 > 현실적인물형 > 결연(結緣)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
• 신분 : 관료
• 지역 : 기호
• 출처 : 삼국유사 ()
• 내용 :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때의 일이다. 벽골제를 쌓은 지가 오래되어 붕괴 직전에 놓이게 되자 김제를 비롯한 주변 7개주 백성들의 생사(生死)가 걸렸다는 지방 관리들이 진정서를 올렸다. 나라에서는 예작부(禮作部)에 있는 국내 으뜸가는 기술자인 원덕랑(元德郎)을 현지에 급파시켜 보수공사를 하도록 했다. 원덕랑은 왕명을 받고 머나먼 김제땅에 도착하여 공사를 서둘렀다. 당시 김제태수 유품에게는 단야라는 아름다운 외동딸이 있었다. 원덕랑은 밤낮없이 태수와 둑 쌓는 일을 같이 하다 보니 태수의 딸인 단야낭자하고도 점차 친숙하게 되었으며 단야 또한 원덕랑을 알게 되면서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원덕랑은 둑 쌓는 일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았고, 특히 고향엔 월내(月乃)라는 약혼녀가 기다리고 있으니 더욱 단야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무렵, 주민들의 원망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옛날부터 이러한 큰 공사는 반드시 처녀를 용추(龍湫)에 제물(祭物)로 바쳐 용의 노여움을 달래야 공사가 순조로운데 원덕랑은 미신이라 하여 이를 실행하지 않고 공사를 했기 때문에 완공에 가까운 둑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백성들의 원망이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 이 때 고향에서 월내낭자가 남장을 하고 김제까지 약혼자 원덕랑을 찾아왔다. 이 사실을 안 단야의 아버지 태수는 월내낭자를 밤중에 보쌈해서 용에게 제물로 바쳐 딸의 소원도 풀어주고, 백성들의 원성도 진정시키며 둑도 완성시키는 일거다득을 노리는 계략을 세웠다. 이러한 아버지의 계략을 알게 된 단야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러나 월내낭자를 죽인다 해서 원덕랑의 결심이 돌아설 리도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또 원덕랑을 잊고 다른 곳으로 결혼할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단야는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을 희생하여 백성의 생명줄인 제방을 완공하고, 또한 연모했던 원덕랑도 월내낭자와 결혼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면 더없이 좋은 일이며, 더욱이 아버지의 살인까지 막게 되어 효도가 되는 것이란 생각에 미치자 죽음을 결심한다. 이렇게 되어 단야는 월내낭자 대신 자기를 희생하게 되었으며, 그 후 보수공사는 완전하게 준공을 보게 되었고, 원덕랑은 월내낭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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