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 남연군묘

흥선대원군 - 남연군묘

분류 문학 > 부정적인물형 > 횡포(橫暴)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조선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호
• 출처 : 한국구전 (10,68)
• 내용 :
옹안리의 원래 지명은 오안리인데 지석이 다섯 개가 있다고 하여 오안리라 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윤씨 종손이 살았는데, 흥선군이 그 집에 파락호의 차림으로 찾아갔다가 박대를 당했다. 윤씨 종손은 흥선군이 앉았던 마루장을 모두 파버려 박대한 것이었다. 이후 흥선군이 권세를 잡게 되자 제일 처음 이 일에 대한 복수를 하여 윤씨 종가를 멸하였다. 봉산면 구암리라는 동네는 원래 식암리(息岩里)라고 하는데 남연군의 상여가 쉬어갔던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 군호(君號)는 왕족의 8촌까지 붙여지는데 남연군은 직계로 보자면 군호가 붙지 못한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서 남연군이라는 군호가 붙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흥선군도 군호를 받게 된 것인데 흥선군은 왕권을 확립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서원을 철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연군의 묘를 옮기게 된 것이었다. 흥선군이 천자지지(天子之地)를 물색할 때 정하진이 와서 왕후지지(王侯之地)와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 두 곳을 아뢰었다. 흥선군은 만대영화는 필요 없고 오직 왕후지지가 필요한 것이라 하여 이를 택하였다. 이때 왕후지지에는 한 가지 흠이 있음을 말하였는데, 그 흠이란 이곳에 묘를 쓰면 장자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었다. 흥선군은 4형제 중 막내였으므로 이 흠을 염려하지 않고 묘를 썼고 후에 흥인군과 흥선군을 제외한 장자와 차자가 일찍 죽음을 맞았다.

결국 흥선군의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흥선군이 섭정을 할 즈음에는 결국 흥인군마저 죽게 되었다. 만연(장만영)은 실제 만인이라고 한다. 왕후지지는 당대제왕지지였는데, 흥선군이 만연에게 제위를 연장할 수 있는 방도를 물었다. 만연은 만인을 죽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이것은 자신을 죽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흥선군은 그 말을 만 명을 죽이라고 한 말로 들어서 천주교도 만 명을 죽였다. 남연군묘의 터는 가야사 금탑의 자리였는데 가야사를 불사르고 봉산 봉림리의 야철지에 가서 탑신을 녹여버렸다. 이후 흥선군은 형제의 죽음과 천주교도 박해, 그리고 가야사 금탑을 녹인 죄책감에 고종의 형 이름으로 보덕사를 지어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불로 주불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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