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남곤이 일본 국왕 사신과 압연관의 일로 예궐하다

[조선 중종]남곤이 일본 국왕 사신과 압연관의 일로 예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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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곤이 일본 국왕 사신(日本國王使臣)과 압연관(押宴官)의 일로 예궐(詣闕)하니, 전교하기를, ˝어제 정윤겸의 장계(狀啓)로 인해 수의(收議)할 때에 미처 수의하지 못한 것이 있다. 왜노(倭奴)들이 창·칼·기계 등을 준비하여 지난해에는 회령포에 침범하였고, 금년에는 또 황해도·전라도 등지에 침범하였으니, 이런 동기는 반드시 그들의 욕망을 달성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오늘 일본 사신에게 연향(宴享)하고 나서, 정윤겸이 봉진(封進)한 왜두(倭頭) 및 창·검·의복 등의 물건을 그들에게 보이면서 ‘신의(信義)로 교린(交隣)하는 것이 옳거늘, 방금 사신 등이 우리나라에 온 때를 당해서 사변이 이처럼 발발하니, 무슨 뜻에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면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황해도에서 생포한 왜인도 일본 사신에게 보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매, 남곤이 회계(回啓)하기를, ˝상교가 지당하십니다. 변장(邊將)이 이런 기회에 맞추어서 적수(賊首)를 많이 베었으니, 매우 상쾌한 일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과거에 제주(濟州)를 왕래하던 상선(商船)·왜인 등이 추자도(楸子島)에 들어가 폐해를 입힌 적이 한두 차례가 아니었으므로 지금 정윤겸에게 포획된 무리가 혹 그 사람들이 아??싶어서, 지금 이 장계를 가지고 온 자는 곧 그들을 수토(搜討)할 때에 수종(隨從)했던 진무(鎭撫)로, 지식(知識)과 무재(武才)가 있는 사람이기에 물어보니 ‘왜선(倭船)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대맹선(大猛船)보다 더 큰데, 채색으로 용문(龍文)을 그렸고 판(板) 틈에는 석회를 바른 것으로, 지난날 추자도에서 절발(竊發)했던 배와는 다르다.’ 하였습니다. 이는 반드시 지난해에 회령포에 침범했던 유이니, 지금 마땅히 사신에게 보여서 그 사실을 알게 해야 할 것이나, 사신은 아담(雅淡)한 인품의 소유자이고보면 그가 아무리 대마 도주(對馬島主)의 요청으로 인해 올라왔다 할지라도 보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만 성중(盛重)은 지난해에 왔을 때에 스스로 제 공(功)을 과시하고 거만한 발언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그가 올라오면 반드시 여전하게 불공(不恭)한 일이 있을 것이니 그가 발설(發說)할 때에 왜두(倭頭) 및 잡물(雜物)들을 보이면서 ‘네가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너의 무리가 우리 변경(邊境)을 이처럼 침범하였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겠느냐?’ 한다면, 저 역시 할 말이 없을 것이고, 우리나라 역시 위엄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화친하기를 위협하는 이 흉계는 모두 성중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황해도에서 있었던 왜변에 대해서는 관찰사가 치계(馳啓)한 후로는 다시 보고한 바가 없으니, 참으로 왜노(倭奴)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과연 틀림없는 왜적이라면 의당 보여야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오늘 경이 마침 예궐(詣闕)하였기에 의논한 것인데, 지금 들어보니 아뢴 내용이 지당하다. 다만 오늘 사신이 만일 성중(盛重)을 올라가게 해달라고 요청할 경우 ‘조약(條約) 밖의 일이라 하여 굳게 거절해야지 선뜻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어제 이미 의정(議定)하였으나, 부득이 허락해야 한다면 꼭 여러 날까지 버틸 필요 없이 한두 차례 거절한 뒤에 허락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황해도의 왜변에 대해서는 과연 실지 여부를 모르겠다. 그 장계가 금명간에 반드시 이를 것이니, 그 장계가 온 뒤에 처치하는 것이 온당하겠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18년 6월 2일(신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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