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종]통신관 박돈지가 일본과 왜구 근절책을 교섭하고 돌아오다. 일본이 남녀 1백여 인을 돌려보내다

[조선 정종]통신관 박돈지가 일본과 왜구 근절책을 교섭하고 돌아오다. 일본이 남녀 1백여 인을 돌려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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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관(通信官) 박돈지(朴惇之)가 일본(日本)에서 돌아왔는데, 일본국 대장군(大將軍)이 사신을 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치고 피로(被虜)되었던 남녀 1백여 인을 돌려보내었다. 임금이 정전(正殿)에 나아가서 이를 인견(引見)하고, 명하여 4품(品)의 반차(班次)에 서서 예를 행하도록 하였다. 대상국(大相國)은 능(陵) 1백 필, 사(紗)·나(羅) 각각 50필을 바치고, 대내전(大內殿) 의홍(義弘)은 투구 1개, 장검(長劍) 1개를 바치고, 대상국(大相國)의 모후(母后)는 나무로 조각한 지장 당주(地藏堂主) 천불위요(千佛圍繞) 1좌(座)와 극히 정교한 견(絹) 10필과 호초(胡椒) 10봉(封)을 바쳤다. 처음에 삼도 왜구(三島倭寇) 가 우리나라의 변환(邊患)이 된 지 거의 50년이 되었다. 무인년에 태상왕이 명하여 박돈지(朴惇之)를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었는데, 박돈지가 명령을 받고 일본에 이르러 대장군과 더불어 말하였었다. ˝우리 임금께서 신에게 명하기를, ‘우리 중외(中外)의 군관(軍官) 사졸들이 매양 청하기를, 「육지에는 진수(鎭戍)를 두고 바다에는 전함을 준비하여, 지금 우리들이 목숨을 시석지간(尸石之間)에 붙여 초췌(憔悴)하고 노고하기가 이처럼 지극한 데에 이른 것은, 삼도 왜구(三島倭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 신 등은 원하건대 크게 군사를 내어 삼도를 쳐서 도적의 남은 무리가 없게 하고, 우리 국가에 다시는 근심이 없게 하소서.」 한다. 과인이 군관(軍官)과 사졸(士卒)의 희망에 따라 군사를 일으켜 죄(罪)를 토벌하고자 하나, 대장군이 오래동안 병권(兵權)을 장악하여 평소에 위엄과 덕망이 있어 삼도지경(三島之境)에 미치니, 감히 군사를 가만히 행하여 지경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신하를 보내어 좌우(左右)에 고하는 것이다. 또 대장군이 정(精)한 병갑(兵甲)과 엄한 호령으로 어찌 삼도의 도적을 제압하여 이웃나라의 수치를 씻지 못하겠는가? 대장군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하시었습니다.˝ 대장군이 흔연히 명령을 듣고 말하기를, ˝제가 능히 제어하겠습니다.˝ 하고, 곧 군사를 보내어 토벌하게 하였으나 여섯 달이 되어도 이기지 못하였다. 대장군이 대내전(大內殿)으로 하여금 군사를 더하여 나가서 공격하게 하니, 적이 무기와 갑옷을 버리고 모두 나와서 항복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정종 1년 5월 16일(을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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