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연산]예조에서 제주에 유구국의 사람이 표박된 일에 대하여 논하다

[조선 연산]예조에서 제주에 유구국의 사람이 표박된 일에 대하여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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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아뢰기를, ˝제주(濟州)에 표박(漂泊)된 사람을 동평관(東平館)의 왜인(倭人) 사랑(四郞)과 삼랑(三郞)에게 보이니, 말하기를, ˝우리가 예전에 아버지를 따라서 유구국(琉球國)에 갔다가 온 일이 있는데 지금 이미 20여 년이 지났으나 이들의 복색(服色)은 바로 유구국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은 청컨대 사랑(四郞)과 삼랑(三郞)에게 ˝능히 이 자들을 데려다 주고 오겠느냐˝? 물어서, 그가 만약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면 바다를 지나갈 만큼 식량을 넉넉히 주어서 본국으로 보내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니, ˝그렇게 하라.˝는 전교를 내렸다. 그 표류(漂流)된 자는 무릇 10사람인데, 그 이름은 1. 수가운도로(愁加云道老)·2. 이시두로(伊時豆老)·3. 망구고로(忘求古老)·4. 이야두가(伊也豆可)·5. 여야두가(呂也豆可)·6 나이도고(羅伊道古)·7. 기수가마(其愁可麻)·8. 구기사(求其沙)·9. 우무유가(尤無有可)·10. 미후가물로(未候可勿奴) 였다. 그들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으니, 열 사람이 대답하기를, ˝이야구타라마시마라는 곳에 산다고 하는데, 왜의 말에 섬[島]을 일러 ˝시마˝라 하여, 이 섬은 유구(琉球)에 속해 있다. 또 그들에게 제주에 오게 된 연유를 물으니, 모두 대답하기를, ˝배를 타고 바다로 들어갔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되어 왔다고 하는데, 그 말한 바 지향(指向)한 곳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배에 실은 포목과 벼의 출처를 물으니, 다 대답하기를, ˝이 물건은 본도(本島)의 소산이 아니고 유구(琉球)로부터 돌아올 적에 양식이 떨어져서 야마로풍가음도(也麻老風加音島)에 당도하여 의복을 주고 사왔다.˝ 하는데, 다만 그 말한 바 ˝숙식 시위(熟食施爲)˝라는 것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배에 실은 목생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계수(計數)의 물건이라.˝고 하는데, 그 말한바, 계수 시위(計數施爲)라는 것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언어가 왜말과 더불어 혹은 같기도 하고 혹은 다르기도 했다. 동평관(東平館)의 왜인이 모두 58인인데 다 말하기를,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하는데 오직 종익성이 보낸 화지난쇄모(和知難灑毛)와 국구(國久)가 보낸 사랑(四郞)·삼랑(三郞)만이 곧 이르기를, ˝이들의 의복 색깔이나 머리에 쓴 삿갓으로 보아 바로 유구 사람이다.˝ 하므로, 이에 질문을 하게 하니, 대답하기를, ˝우리 섬에 홍화(紅花) 가 많이 생산되어 유구에 수공(輸貢)하는데, 돌아갈 적에 바람을 만나 표류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음이 분명하지 못하여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 출처 : 『연산군일기』 3년 10월 14일(임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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