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대마 도주 평의방이 서계를 보내 관백의 칭호를 복고해달라고 청하다

[조선 숙종]대마 도주 평의방이 서계를 보내 관백의 칭호를 복고해달라고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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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對馬島) 왜인(倭人)이 도주(島主) 평의방(平義方)의 서계(書契)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대개 우리의 예조 참의(禮曹參議)에게 온 글이었다. 대략 이르기를, ˝동무(東武)가 요사이 복호(復號)한 거조가 있었으니, 귀조(貴朝)의 서식(書式)은 한결같이 천계(天啓) 4년 이전의 구례(舊例)를 사용하시면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하였으니, 이것은 곧 관백(關白)이 왕호(王號)를 회복한 일이었다. 이에 역관(譯官) 등이 그 까닭을 책문(責問)하니, 왜인이 대답하기를, ˝두 번 지나간 정사년·정미년 과 갑오년 의 서계(書契)에 모두 일본국왕(日本國王)이라 칭(稱)하였고, 을해년 에 일본(日本)으로부터 보낸 서계(書契)에 처음으로 대군(大君)이라 칭하였는데, 대군의 칭호는 당초에 귀국(貴國)에서 창제한 것이 아니고 곧 우리나라에서 고친 것이므로 복고(復古)하여 달라는 소청이 있게 된 것입니다.˝ 하였다. 동래 부사(東萊府使) 이정신(李正臣)이 그 서계를 물리쳐 받아들이지 않고는 몰래 그 한 벌[本]을 등사(謄寫)하여 치계(馳啓)하니,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대군(大君)의 칭호를 쓴 지 이미 77년이나 오래 되었는데, 복고(復古)를 청하는 말이 뜻밖에 갑자기 나왔으니, 이는 지난날의 예단(禮單)에 비유할 바가 아니다. 엄중한 말로 준열하게 물리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국(備局)에서 회계(回啓)하기를, ˝엄중한 말로 준열하게 배척하는 방도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데, 문자(文字)로 갖추어서 주달(奏達)하기가 어려우니, 명일(明日)에 여러 재신(宰臣)과 더불어 입대(入對)하여 품정하고자 합니다. 또 대군(大君)으로 개칭(改稱)할 때는 반드시 곡절이 있었을 것이니, 춘추관(春秋館)의 《실록(實錄)》을 즉시 상고하여 내도록 하소서.˝ 하니, 이를 윤허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숙종 37년 5월 25일(계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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