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통신사 임광, 부사 김세렵 등이 일본에서 돌아와 사정을 아뢰다

[조선 인조]통신사 임광, 부사 김세렵 등이 일본에서 돌아와 사정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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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임광, 부사 김세렴(金世濂), 종사관 황감이 일본에서 돌아오니, 상이 불러서 만나 보고 일본의 사정을 물어보았다. 임광이 대답하기를, ˝그 나라는 명령이 엄하여 이웃 나라 사신에게 그들의 사정을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이 본 바로는 관백은 군병의 일을 힘쓰지 아니하여 포(砲)를 쏘는 일은 완전히 폐지하였으므로 사람들이 포성을 들으면 놀라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일본 전선(戰船)에도 방패막이가 있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사면에 있었고 그 사이에 장막을 설치하여 무기를 갖추어 두고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접대하는 예는 어떠하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그릇은 정결하고 진수(珍羞)가 가득하였으며 대단히 사치로운데다 예모도 후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들의 사치가 중국과 비교하여 어떻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가택의 도배는 모두 니금(泥金)을 사용하였으며, 장관의 마구간이 혹 수백칸이 되는데, 모두 오색으로 단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보다 심하다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사치가 그러한데 그곳의 백성은 곤궁하지 않?、?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사치가 이미 극에 달하고 부세도 역시 무거우니 농민의 곤췌함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관백의 사람됨은 어떠하였으며, 그들의 정치는 또한 어떻던가˝? 하자, 임광이 아뢰기를, ˝그의 속마음은 알 수 없으나 외모로 볼 때 용렬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흉년을 만났을 때는 힘껏 너그러운 정치를 행하였고 또한 재화를 좋아하지 않아 평수길(平秀吉)보다 훌륭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가광(家光)이 대대로 승습할 것이라고 하던가˝? 하니, 임광이 아뢰기를, ˝가광은 아들이 없어서 족자(族子)에게 전위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인조 15년 3월 9일(무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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