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세견선 허용에 관한 일본 사신의 상소문

[조선 중종]세견선 허용에 관한 일본 사신의 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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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아뢰기를, ˝일본 사신들이 친히 대궐에 나아가 상소하고 싶어 하는데, 객인(客人)이 상소를 함은 사례에 어긋나는 것이라 계달(啓達)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감히 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다른 나라의 사신이 상소하는 예가 없었으니, 막아야 한다.˝ 하였다. 그의 상소에는, ˝일본 국왕전(日本國王殿)의 중[僧] 대원(大原)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고 백 번 절하며 말씀드립니다. 우리 성문 신무(聖文神武)하신 금상 황제 폐하(今上皇帝陞下)께서 즉위하신 이래 만물(萬物)들이 제 스스로 뜻하는 대로 되어지며, 비가 와야겠다 하면 비오게 되고 볕이 나야겠다 하면 볕이 나게 되었습니다. 신이 진실로 간직한 바가 있어, 공구(恐懼)스럽지만 말씀드리고 싶기에 삼가 광화문(光化門)에 나아가 소(疏)를 올려 주문(奏聞)하오며 삼가 성지(聖旨)가 내리기를 바랍니다.˝ 했고, 그의 사(辭)에는, ˝ 임종(林鍾) 의 음률(音律) 속에 예법(禮法) 맡은 예조의 안내를 받아, 괴청(槐廳) 의 그늘로 해서 다행히 보필(輔弼) 맡은 재상들을 접하게 되었으니, 지금 동쪽에서 온 중을 가엾이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임금께 주달하여 들어주게 되고, 더욱 유익할 길을 강구(講求)하여 정히 서로 소득이 있게 되기를 거듭거듭 지극하게 빕니다. 금상 황제 폐하께서는 삼왕(三王)의 위에 있으며 만국(萬國)을 순박해지게 하시므로, 멀리 조선 나라에 와서 국은(國恩)을 입었고, 노성한 대신들과도 의를 맺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일본의 왕명(王命)을 욕되게 하고 있어, 사신으로서의 공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되나 저일은 안 된다 하시고 이것은 가하나 저것은 부(否)타 하시는데, 진실로 선왕(先王)과 화호(和好)할 무렵 붕중이 왔을 적에는 세견선(歲遣船)을 25척까지 승락해 주셨으면서, 신왕(新王)의 말은 버리시려는 것입니까? 지금 약조(約條) 중에서 두 가지 사항을 감하려 함은 어느 조항만 시행하시려는 것인데, 마치 수레에 예와 월 이 없는 것과 같은 격으로서, 죄지은 내력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리게 되는 일입니다. 사신 승려 모(某)는 독정(禿丁) 이 된 지 여러 해인데, 조잔한 몸으로 바다를 건너와 태평고(太平鼓) 소리를 들으며 유리각(瑠璃閣)에 오른 것이 두 차례나 됩니다. 간직하고 있는 속명도(續命刀) 를 자비고(慈悲庫)에서 내오기 기다리고 있사오니, 억만년(億萬年)의 두 나라가 저의 남은 나이를 살게 해 주시어 모두 살아서 돌아가게 되기를 거듭거듭 지극하게 바랍니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17년 6월 11일(병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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