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왜인은 대마 도주의 문인을 가지고 조선에 오게 하다

[조선 중종]왜인은 대마 도주의 문인을 가지고 조선에 오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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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아뢰기를, ˝대마 도주 치위관(對馬島主致慰官) 등이 본도에 가서 위로한 뒤에 도주에게 선유(宣諭)하기를, ‘귀도 사람들이 처음 삼포에 왔을 때에, 60호만 유거하기로 약속하였는데, 세월이 오래 되어 인구가 점점 번성하니, 그 땅이 좁을 뿐만 아니라, 간세(奸細)한 무리가 차츰 나타나, 법을 무시하고 기강(紀綱)을 범하는 자가 또한 많다. 그러므로 전에 여러 번 글을 귀도에 보내어 모두 데려가게 하였더니, 족하(足下)의 선조부(先祖父)도 처음 약속을 알므로 명령을 듣고 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로 미루어 아직까지 거행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와서는 크게 번성하여 국가에서 길러 준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점점 교만한 마음을 품고 횡포한 짓을 하는 것이 근일에 와서 더욱 심하다. 지난 정묘년 에 평시라(平時羅)가 돌아가는 편을 통하여, 사유를 갖추어 통유(通諭)하였는데, 여러 해가 되도록 회보하지 않으니, 중간에서 숨기고 전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삼포의 왜인이 징계하지 않는 데에 인심하고 날이 갈수록 교만 횡포하여, 지난 무진년 겨울에는 웅천현(熊川縣) 사람들이 가덕도(加德島)에서 벌목(伐木)할 때에 여러 왜인이 불의에 습격하여 9인을 살해하고 의복·양식과 제구를 다 빼앗아갔으며, 기사년 3월 20일에는 제주(濟州) 사람이 공상(貢上)하는 말을 싣고 보길도(甫吉島)에 정박하였을 때에 왜선(倭船) 5척이 가만히 다가와서 6인을 죽이고 칼로 10여 인을 상해하고, 가졌던 의복·양곡 및 첩문(牒文) 을 겁탈하여 갔다. 변방 장수가 배 한 척을 추격하여 17인을 다 죽이고 빼앗아간 물건과 첩문을 모두 찾았으나, 다른 배 4척은 풍세를 이용하여 빠져나갔는데, 이것이 반드시 삼포 왜인과 귀도 왜인의 소위일 것이다. 이런 무리는 우리나라에는 은혜를 저버리는 도적이요, 귀도에는 주인을 배반하는 간사한 무리이니 어찌 하늘의 벌을 받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전년 4월에 예조가 아뢰어, 예빈시 정(禮賓寺正) 윤은보(尹殷輔)를 귀도에 보내어 사유를 묻게 하여, 이미 길을 떠났는데, 도주(島主)의 부음(訃音)이 들어왔으므로, 전하께서 측은히 여기시어 곧 가는 것을 중지시키니, 은보가 중도에 돌아왔다. 족하가 어찌 이를 듣지 못하였겠는가? 전에 온 특송(特送) 종성명(宗盛明)이 가지고 온 서계(書契)를 보니, 전도주가 여러 해 동안 병석에 누워 금지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나, 평시라가 가지고 간 서계를 받고도 망연히 금지할 생각을 하지 아니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장차 조사할 것을 계획하고 미처 잡지 못한 것인가? 족하는 그 때에는 아직 사립(嗣立)하지 않았으니, 혹 모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지금은 이미 사업을 계승하였으니, 어찌 다른 사람에게 미룰 수 있는가? 마땅히 마음을 깨닫고 피차의 이해를 깊이 생각하여 급히 가덕·보길 등 섬의 적왜(賊倭)를 잡아서 처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마도 안의 왜인과 삼포(三浦)에 거류하는 왜인은 다 같이 새로운 각오로 국가에 향하는 마음을 분명히 하여, 새로 도주가 된 효과를 나타낸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이 없겠다. 이러한 법을 범한 자를 어찌 범행 시일이 오래라 하여 버려 두고 다스리지 않겠는가?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삼포에 거류하는 왜인을 선대의 옛 약조에 의하여 60호 이외는 모두 쇄환(刷還)하여 간세(奸細)한 무리로 하여금 말썽을 일으키고 간악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여, 양쪽에서 서로 의심하지 않고, 후세에 길이 좋게 지내는 방법으로 삼는 것이 또한 좋지 않은가? 또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데는 성의로 섬기고 거짓이 없어야 한다. 귀도(貴島)가 우리나라 동쪽 가에 있어 대대로 교린(交隣)의 도를 닦고 있으니, 먼 곳 왜인의 사기하는 것을 잘 살펴서 통과시켜야 하며 속이는 자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먼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로서 도서(圖書) 를 받은 지 이제 50여 년이 넘은 자가 자못 많다. 처음 도서를 받을 때에 나이 겨우 30~40세였던 자라도 이제는 나이가 80~90을 밑돌지 않을 것이요, 그 중에는 죽은 자도 반드시 많을 것인데, 그들의 세견선(歲遣船)이 끊이지 않으니, 이 또한 중간에서 간사한 사람들이 사기하는 일이다. 귀도에서는 어찌하여 잘 살피지 않고, 아직까지 문인(文引) 을 주어서 통하게 하는가? 이제부터 이런 사람은 단연코 접대하지 않겠다.’고 함이 어떠합니까?˝ 하니, 상이 ‘그리하라.’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5년 2월 3일(기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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