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성균관 진사 유건 등이 중에게 호패를 주지 말 것, 일본에 《대장경》을 주지 말 것을 아뢴 상소문

[조선 중종]성균관 진사 유건 등이 중에게 호패를 주지 말 것, 일본에 《대장경》을 주지 말 것을 아뢴 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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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 진사 유건(柳健) 등이 상소하기를, ˝전하께서는 비근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고 물이 흐르듯이 간언(諫言)을 따르시며, 조금이라도 얻을 것이 있는 생각이면 어리석은 자이냐 슬기로운 자이냐를 가지고 그 사람을 견주지 않고, 조금이라도 쓸 만한 말이면 귀한 자이냐 천한 자이냐를 가지고 듣는 것을 달리하지 않으셨으니, 즉위하신 지 30년 동안에 무엇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취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중들에게 호패를 주는 일 때문에 견항의 일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여러 번 글을 올려 아뢰었으나, 전하께서는 조정의 의논이라 핑계하고 늦추면서 윤허하려 하지 않으시니, 어찌 물이 흐르듯이 하시던 아름다움이 전보다 덜하여서 그렇겠습니까. 이는 다만 전하께서 생각하시기를 ‘중들의 해독이 근래에 조금씩 심하여지므로 조정의 대신들이 서로 금지할 방도를 강구하여 이처럼 중을 부리는 법을 세웠는데, 어리석고 망령된 서생들이 조정 대신들의 뜻을 알지 못하고 시세에 맞추어 풍속을 바로잡는 방편에 어두워서, 유교와 불교의 분변만을 지켜 그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를 어찌 들을 만하겠느냐.’ 하시어, 이 때문에 미리 마음에서 물리치고 그 말을 살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신들이 전에 을미년 【1535 중종 30년.】 8월 12일 의정부·중추부·한성부가 함께 의논하여 아뢴 말을 보았는데, 그 대강의 뜻은 ‘불교는 지금 몹시 쇠퇴하였으나 중들이 많은 것은 예전보다 몹시 심한데, 죄와 신역(身役)을 도피하여 서로 맺어 간사한 무리가 되어 출몰하여 겁탈을 행하되 못하는 짓이 없어 그 해독이 도리어 숭상하던 때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막을 방도를 급히 강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하여 모두를 찾아내어 낱낱이 법으로 처치하면 위 명제(魏明帝)가 중들을 죽인 것과 같아서 그 뿌리는 끊을 수 없고 다만 소요하여지기만 할 뿐이며, 제쳐놓고 조치하지 않는다면 점점 퍼져서 뒤에는 도모하기 어렵게 될 걱정이 있으니, 지금의 계책으로는 양정(良丁) 으로서 중이 된 자가 스스로 역사에 응모하게 하여 관에서 호패를 주고, 호패가 없이 몰래 절에 들어가거나 여염에 함부로 다니는 자는 다 도둑으로 죄를 논해야 한다.’ 하였으니, 조정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뜻이 본디 중이 되는 것을 막는 데에 있다는 것을 신들이 몰라서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다만 그 뜻은 금지하는 데에 있을지라도 방법이 천박하고 어긋나서 근원을 막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그 막는 방법이 권장하는 것이 되어 도리어 막지 않아 해독이 되는 것보다 심하니, 막으려는 마음은 옳으나 법령이 그르고, 막으려는 뜻은 치밀하나 방법이 엉성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신들은 그 마음을 옳게 여기되 그 법령을 그르게 여기고, 그 뜻을 치밀하게 여기되 그 방법을 엉성하게 여깁니다. 전에 논열(論列)한 것이 모두 다 이 뜻을 반복한 것인데 전하께서는 ‘중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하셨으니, 이는 신들에게 조정의 뜻을 모른다 하신 것인데, 신들에게 조정의 뜻을 모른다고 하신다면 곧 신들의 뜻을 모르시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또 ‘조정의 의논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는가.’ 하셨는데, 만약에 그 시비와 득실이 돌아가는 곳을 살피지 않고 일마다 반드시 ‘조정의 의논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하신다면 신들은 의혹됩니다. 어느 세대의 임금이든 그 정치에는 모두가 조정의 의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 이 때문에 성취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실패하기도 하며 이 때문에 얻기도 하고 이 때문에 잃기도 하니, 좋은 것을 가려서 알맞게 쓰지 못하고 조정의 의논에 견제되기만 하므로 그 성패와 득실의 보람이 이처럼 어지러운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성명(聖明)하시고 조정의 대신들도 다 노성(老成)하므로, 의논하는 사이에 정사(政事)마다 모책이 깊고 염려가 멀어서 사람마다 그 한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고 보면, 호패의 법을 시행하는 깊은 뜻이 따로 있어서 어리석은 신들이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성인의 지혜는 모르는 것이 없는데도 묻기를 좋아하고, 높은 지위는 스스로 독단할 수 있는데도 미천한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하의 일은 변화가 무궁하여 밝은 사람이라도 더러 살피지 <중략>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32년 2월 5일(갑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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