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일본에 잡혀 있던 포로 570여명이 돌아오다. 구주절도사가 보낸 글

[조선 태조]일본에 잡혀 있던 포로 570여명이 돌아오다. 구주절도사가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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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회례사(日本回禮使) 최용소(崔龍蘇)가 구주 절도사(九州節度使) 원요준(源了俊)이 보낸 중 종구(宗俱)와 함께 돌아오고, 피로되었던 남녀 5백 70여인이 돌아왔다. 예빈 경(禮賓卿) 송득사(宋得師)를 보내어 영접 위로하게 하였는데, 그 절도사의 글월은 이러하다. ˝일본국 진서 절도사(鎭西節度使) 원요준(源了俊)은 조선국 두 시중상공합하(侍中相公閤下)에게 글월을 올립니다. 귀국 사신 공조 전서(工曹典書) 최용소가 와서 내리신 존교(尊敎)를 분향(焚香)하고서 배독(拜讀)하였는데, 기거(起居)가 전보다 낫다고 하시니 기뻐하여 마지 않으며, 나아가서 좋은 토산물을 〈단자에 적힌〉 수대로 받으오니, 멀리서 후한 뜻에 감사할 뿐입니다. 도적을 금하라는 유서(諭書)를 받자와 일기도와 대마도(對馬島)에 대하여 힘을 다한 지 이미 오래 되오나, 바다 가운데의 도둑이라 배로 집을 삼기 때문에, 바람이 부는 대로 따라 정착하여 일정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옛날과 비교하여 도둑들이 10분의 8, 9는 감소되었으니, 만약에 또 관군(官軍)의 장수들에게 다른 방도를 내게 한다면 통호(通好)하는 길이 끊어질까 염려됩니다. 속담에 ‘도둑은 소인이나 지혜는 군자보다 낫다.’ 하였으니, 저들의 계략과 모책은 비록 성현이라 하더라도 혹 따르지 못함이 있으니, 바라옵건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졸한 계책이나마 그대로 맡겨 두면, 반드시 지저귀는 무리들이 없어져 두 나라의 정이 마땅히 좋아질 것이니 헤아리소서. 피로된 남녀들은 엄중하게 추쇄(推刷)해서 있는 대로 함께 보내옵고, 감히 구류(拘留)해 두지 않겠습니다. 거듭 귀국 사신 호조 전서 김적선(金積善)을 뵈오니 두 《장경(藏經)》을 호송해 주시어 금년 3월 초8일에 배를 이 포구에 매어두고 귀한 글월을 받았습니다. 봉함을 뜯고 절하고 읽어 보니 귀국의 은혜에 감동됨이 마치 바다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종교에 빛이 있고 산천이 더욱 중해지니 이마에 손을 올리기 한이 없습니다. 이번에 함께 온 두 절 중과 더불어 길이 받들어서 귀국의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정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또 채색 등 물건을 받자오니 서울에서 구하여 온 사신 김호조(金戶曹)와 함께 실려 보낸 것이오라, 이번에 백원 시종(白垣侍從) 종구를 임명해 먼저 보내어 특히 감사의 성의를 표하오니 다행히 살피소서. 근일 첫여름에 나라를 위해 자중하기를 엎디어 바라오며, 다 할말을 못합니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 7월 10일(신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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