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안남국 막등용의 반란건을 승지 안현에게 묻다

[조선 중종]안남국 막등용의 반란건을 승지 안현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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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승지 안현(安玹)을 인견(引見)하고 묻기를, ˝안남국(安南國)의 막등용(莫登庸)이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중국이 군사를 일으켜서 쳤는데, 투항하고 난 뒤에는 그를 도통사(都統使)로 삼아서 습봉(襲封)시켰으니, 중국의 일을 시비해서는 안 되나, 이 일은 미진한 듯하다.˝ 하니, 안현이 아뢰었다. ˝막등용은 전왕의 외손이고 지금 왕의 사촌 형제인 친족인데, 반란한 20여 년 동안 중국이 제어하지 못하였습니다. 신(臣)이 주사(主事)가 걸어 놓은 지도에서 보니, 안남은 경계가 중국에 잇닿았는데 바다가 지경을 두르고 있으며 길이 매우 험하였습니다. 처음엔 진장(鎭將)을 시켜 토벌하다가 모백온(毛伯溫)이 병부 상서(兵部尙書)가 되고 나서는 진남관(鎭南關)에서 초유(招諭)하였는데, 막등용은 그 아들이 죽었으므로 손자 막복해(莫福海)를 데리고 투항하고 또 막문명(莫文明)을 경사(京師)로 보내어 대죄(待罪)하였다 합니다. 신의 짐작으로는, 중국 남방에 일이 있고 북쪽 변방이 요란한데, 이미 투항하였으므로 우선 견제하느라 천자가 결단하여 도통사로 삼아 세습시켰으며, 또 공헌(貢獻)의 일을 문책하지 않았으니, 위엄을 대강 보여서 조정의 체통을 잃지 않았을 뿐인 듯하고 실은 버려둔 것입니다. 이 밖의 처리한 일은 들어보지 못하고 왔습니다.˝ 【안현이 먼젓번에 경사에서 돌아 왔으므로 상이 이때에 인견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37년 5월 17일(정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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