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조강에 나아가다

[조선 중종]조강에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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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에 나아갔다. 대간이 변수·나즙·조영걸·김황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아서 대사헌 박열이 아뢰기를, ˝이전에는 부경 사신(赴京使臣)을 극히 골라서 보냈거니와, 이제 조한손(曹漢孫)을 정조사(正朝使)로 차정하였습니다. 근래 중원에 사변이 있어서 누구나 가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모두 무신(武臣)을 보내므로, 이장생(李長生)·신계종(申繼宗)·유미(柳湄) 같은 이들을 연달아 보냈으니, 무신을 연달아 보낸 것은 나라의 체면에 있어 합당치 못합니다. 중원에서는 우리나라를 예의지국이라고 생각하는데, 폐조(廢朝) 적에 중원에 간 어느 사신이 필단(匹段) 을 무역할 수 없음을 예부(禮部)에 호소하자, 예부에서 매우 비웃었으니 이제는 골라서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국에 사신 보낼 사람은 본디 골라서 보내야 하나, 문신·무신을 구별해서는 안 된다.˝ 하매, 특진관 이점이 아뢰기를, ˝박열의 말이 지당합니다. 신이 무신년에 연경(燕京)에 갔었는데, 중국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 아이들까지도 다들 우리를 문사(文士)라고 여겨 존중하였습니다. 서장관은 꼭 골라서 보내야만 합니다. 그 때에 안남국(安南國) 사람도 내조(來朝)하였으며, 서장관 황필이 마침 우리 사행에 끼어 있었는데, 안남국 사람이 시를 많이 지어 보내오자, 황필이 즉시 차운하여 화답하니, 그 사람이 매우 감복하였습니다.˝ 하니, 조한손을 보내지 말고 다른 사람을 골라서 보내도록 명하였다. 정원이 진하사(進賀使) 정옥형(丁玉亨)의 선래 통사(先來通事) 우종(禹鍾)의 말을 가지고 아뢰기를, ˝정월 27일에 북경에 도착하고 2월 3일 방물(方物)을 진상하고 13일에 하마연을 했습니다. 태자를 낳은 빈(嬪) 왕씨(王氏)가 2월 11일에 동궁(東宮)으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동궁은 곧 정궁(正宮)입니다. 태자를 낳았기 대문에 정궁으로 옮긴 것입니다. 황제가 또 다른 빈에게서도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황제가 선제(先帝)의 능침(陵寢)에서 3월 1일 제사를 친히 거행하려고 2월 24일에 천수산(天壽山)에 행행하였다가, 서호(西湖)를 두루 유람하고 3월 6일 경사로 돌아왔는데, 이번의 친제는 태자를 위해 비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조신(朝臣)들이 상소하여 태자를 책봉하기를 청했지만 성지(聖旨)에 윤허하지 않았으므로 언제 책봉하게 될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또 듣건대 안남국(安南國)의 역신(逆臣) 막등영(莫登瀛)이 국왕 여씨(黎氏)의 땅을 빼앗고 조공하는 길을 막아 조공을 행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나라의 사신 정유료가 조정에 아뢰므로 조정에서는 허실을 알고자 하여, 정유료를 인하여 별도로 그 나라에 사신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3월 15일에는 상마연(上馬宴)을 하려다가 황후 장씨(張氏)를 이날 출빈(出殯)하므로 20일로 물리어 거행하였고, 25일에 상사(賞賜) 및 따로 내리는 표리(表裏)를 받았습니다. 신들이 북경에 들어간 뒤로는 천자가 한번도 조회를 보지 않았기에 칙서는 받지 못했는데, 이달 27일에 황제가 또 삼공과 육원(六媛)을 거느리고 천수산에 행행하였다가 4월 4일에 경사로 돌아와서도 조회를 보지 않으므로, 10일에야 조회는 없이 칙서를 받았습니다. 12일에 길을 떠났고 13일에 통주(通州)에서부터 먼저 와 21일에 요동에 도착했는데, 천사들이 머무르고 있은 지가 이미 5일이나 되었습니다. 22일에 세 대인(大人)과 총병관(摠兵官)을 뵙고 이어 도찰원(都察院)으로 천사를 뵈러 갔는데, 천사가 한 낮이 되어서야 일어나 대청(大廳)으로 나와 앉더니, 의물(儀物)을 갖추고서 신을 불러 들어와 뵙게 했습니다. 이어 ˝몇달이나 머물렀으며 어째서 먼저 오는가˝? 하기에 ˝황제께서 조서가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먼저 진하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어 따로 칙사(勅賜)가 있었으므로 본국의 사신이 먼저 저를 보내 전하께 계달하게 해서이다.˝ 하였습니다. 두 사신이 서로 돌아보며 웃다가 이어 ˝당신들 중국말 할 줄 아는가.˝ 하므로, 통사 강진(康鎭) 등이 ˝중국 말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신을 불러 앞으로 다가 오게 하더니, 두 사신이 일어서서 ˝우리들을 위해 전하게 문안드려 달라. 너무나 후하신 뜻에 감사하므로 글로 써<중략>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8년 8월 13일(무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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