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안행량을 파는데 중들을 부리도록 하고 일본국이 요구한 대장경을 주도록 하다

[조선 중종]안행량을 파는데 중들을 부리도록 하고 일본국이 요구한 대장경을 주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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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김근사가 의논드리기를, ˝안행량의 일은 일의 편의를 헤아려서 내년 봄에 거행하기로 이미 정하였습니다. 이제 천사가 나온다 하여 미리 염려하여 멈추는 것은 온편하지 못한 듯하나, 천사가 나올 시기를 확실히 안다면 멈추더라도 무슨 방해될 것이 있겠습니까? 중을 부리는 것은, 당초에 조정의 논의가 ‘놀고 먹는 무리가 호적에서 빠지고 신역을 피하여 점점 늘어서 떼를 지어 도리에 어그러지는 짓을 많이하여 평민에게 해독이 미친다.’ 하므로 이해를 깊이 헤아리고 편부(便否)를 상세히 살펴서, 중을 부리는 일을 우선 견항(犬項)에서 시험한 것입니다. 본디 부처를 높이고 중을 높이는 뜻이 아니었는데 이의(異議)가 분분하여 이제까지도 안전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유생의 상소를 보건대, 정론에서 나오기는 하였으나, 국가의 근본 계책은 잘 모르는 듯합니다. 대체로 중대한 일을 시행할 때에는 큰 의리에 의거해야 하고, 그 나머지 잡의(雜議)는 돌볼 것이 못됩니다. 견항(犬項)의 일을 보면 일이 쉽게 성취된 것이 오로지 중들의 힘이었거니와, 이제 안행량의 일을 당하여 여러 고을에서 식량을 구걸하는 폐단은 크지 않을 듯한데, 만약 중들을 제외하고 풍년을 기다려 군사를 모아서 일한다면 끝내 파낼 길이 없을 것이니, 처음부터 일을 일으키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일본국이 요구한 《대장경(大藏經)》을 주고 안 주는 것이 어찌 우리나라가 부처를 숭상하고 아니하는 데에 관계되겠습니까? 이는 지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조종(祖宗) 때에도 준 때가 있으니, 교린(交隣)하는 의리에서 주어도 무방할 듯합니다.˝ 하고, 좌의정 김안로가 의논드리기를, ˝성지(聖旨)를 보옵고, 또 유생이 상소하여 논열(論列)한 것을 보건대 그 정도(正道)를 숭상하고 이교(異敎)를 억제하는 뜻은 매우 아름답습니다마는, 당초 조정의 신하가 함께 꾀하여 이 일을 일으킨 것이니 어찌 이 문제를 살피지 않고 도리어 성행하는 꼬투리를 열었겠습니까. 불교의 쇠퇴는 지금보다 심한 때가 없는데도 중들의 숫자는 숭봉하던 때보다 훨씬 더 많아, 산속의 절은 모두 도피한 무뢰자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어,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고 집을 불사르고 무덤을 파며, 점점 간사한 자가 불교의 수복을 강구하는 바탕을 만들어 날로 성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형세입니다. 까마귀처럼 흩어지고 개미처럼 모여 마구 겁탈하며 나타나고 숨는 데, 급히 막으면 변란을 일으키고 늦추면 더욱 늘어, 장래의 걱정을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가만히 사라지고 절로 감화하게 하는 방도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안행량의 일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뜻은 따로 있었습니다. 찾아 모아 군적(軍籍)에 채우면 모두 밭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소한 자의 말과 같이 된다면, 왜 막기 어려움을 근심하여 굳이 모아서 일 시키는 계획을 하겠습니까. 한편 바르고 한편 간사한 것이 음양(陰陽)이 병립하는 것과 같으므로 근원을 끊을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이 계책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국가가 한 군졸도 괴롭히지 않고 곡식을 조금도 소비하지 않고서 오랜 숙제인 안행량의 일을 끝내고 뱃 사람이 고기밥이 되는 참사를 벗어날 것이니, 호패(號牌)를 가진 자만을 두고 나머지를 죄다 추쇄(推刷)해야 합니다. 이를 냇물을 막는 일에 견주면, 먼저 한 가느다란 길을 터서 남은 물결이 갈 데가 있게 하여 부딪쳐 넘쳐서 무너지는 걱정을 막는 것과 같아, 한 큰 해독을 없애고 몇 가지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정을 징발하여 파내려고 한다면, 일반 백성이 열흘 동안 하는 일이 어찌 중들이 하루 일하는 것을 당하겠습니까. 예전의 일로 보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칠 것이니, 할 수 없는 형세입니다. 뭇 의논이 어지럽고 이해가 엇갈리니 주상이 원대한 계책을 취택하여 알맞는 것으로 조치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 사신이 불경을 요구하니, 오래된 절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 아까울 것은 없습니다마는, 우리나라는 불법을 받들지 않으므로 불경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답하고, 대신 우리 유교의 서적을 내려주고 아울러 다른 물건을 주어 그 바라는 마음을 위안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우의정 윤은보가 의논드리기를, ˝이제 정도(正<중략>출처 : 『조선왕조실록』 중종 32년 2월 2일(신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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