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관상감 제조 김육이 책력을 만드는 일에 대하여 아뢰다

[조선 인조]관상감 제조 김육이 책력을 만드는 일에 대하여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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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감 제조 김육(金堉)이 아뢰기를, ˝황제(黃帝) 이래 옛 책력(冊曆)은 육가(六家) 이후 한 무제(漢武帝) 때에 이르러서 낙하굉이 《태초력(太初曆)》을 만들었는데, 동한(東漢) 말기에 이르기까지 무려 세 번이나 고쳐졌고, 위(魏)나라로부터 수(隨)나라에 이르기까지 또 고쳐진 것이 열세 번이며, 당(唐)나라의 책력도 여덟 번이나 고쳐졌습니다. 또 오대(五代)의 책력은 여덟 종류가 있으며, 남북조(南北朝)와 양송(兩宋)은 책력을 열한 번이나 고쳤습니다. 이는 책력이 오래됨에 따라 시각(時刻)의 차가 나서 그러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소견이 각기 정추(精粗)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책력의 개조가 이처럼 빈번하였던 것입니다. 원나라 초기에 이르러서는 곽수경(郭守敬)·허형(許衡) 등이 역법에 밝아서 시각의 차를 정한 것이 매우 정밀하여, 절기의 영축(盈縮), 지속(遲速), 가감(加減)에 따른 차를 두어서 지원(至元) 18년인 신사년을 역원(歷元)으로 삼았는데, 오늘날까지 행용하여 무려 3백 65년이나 되었지만 일식과 월식이 별로 착오가 없으니, 후세의 정교한 책력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천체의 운행이 매우 활발함에 따라 쌓인 차가 날로 더 많아져서, 초저녁과 새벽에 나타나는 별자리의 위치가 조금씩 틀립니다. 천체 운행의 수가 이미 다 찼으므로 당연히 책력을 고쳐야 하는데, 서양의 책력이 마침 이러한 시기에 나왔으니 이는 참으로 책력을 고칠 기회입니다. 다만 한흥일(韓興一)이 가지고 온 책은 의논만 늘어 놓고 작성은 하지 않아서 이 책을 지을 수 있는 자라야만 이 책을 제대로 알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10년을 탐구한다 해도 그 깊은 원리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중국이 병자·정축 연간에 이미 역법을 고쳤으니, 내년의 새 책력은 필시 우리나라의 책력과 크게 다를 것입니다. 새 책력 속에 만약 잘 맞아떨어지는 곳이 있다면 당연히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책력을 만드는 일은 중국에서 금지하는 일입니다. 비록 사람을 보내어 배움을 청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번 사행 때에 일관(日官)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역관을 시켜 흠천감(欽天監)에 탐문하여 보아서 근년의 책력 만드는 누자(縷子)를 알아내어 그 법을 따져보아 의심나고 어려운 곳을 풀어 온다면 거의 추측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금년의 역서를 우선 고찰하여 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때에 서양 사람 탕약망(湯若望) 이라는 자가 청나라 흠천감이 되어 인무(印務)를 관장하면서 새 법을 만들어 옛 책력을 고치고 또 성도(星度)의 차수(差數)와 절기의 영축(盈縮)을 논하여 《신력효식(新曆曉式)》이라는 책을 펴내었는데, 한흥일이 북경에서 그 책을 얻어 가지고 왔다. 상이 일관에게 명하여 그 법을 따져 보라고 하였기 때문에 김육이 이렇게 아뢴 것이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인조 23년 12월 18일(병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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