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일본 사신이 대장경 인본을 청하며 토물을 보내오다

[조선 세종]일본 사신이 대장경 인본을 청하며 토물을 보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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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중 광엄(光嚴) 등 29인이 왔다. 그 서계(書契)에 말하기를, ˝연전에 우리나라에서 요구한 대장경(大藏經) 인판을 귀국에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불사(佛寺)와 신사(神祠)에 본받을 것이 없음을 실로 결전(缺典)으로 여깁니다. 이제 귀국의 전사(專使)가 돌아가는 배에 부탁하여 일장(一藏)을 청구하오니, 반드시 7천 권을 전비(全備)한 인본(印本)으로 부쳐 오면 백마 의 지난 일을 금오(金烏) 가 나오는 곳에서 거듭 보게 되겠습니다. 이웃나라의 변하지 않는 서약이 어떤 일이 이와 같겠습니까. 변변치 않은 토물(土物)은 물방울과 티끌만한 것으로 해악(海嶽)에 비하오니, 엎드려 채납(採納)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별폭(別幅)에는 대도(大刀) 10파(把), 장도(長刀) 10병(柄), 창 10조(條), 도금채화병풍(塗金彩花屛風) 1쌍(雙), 여러 색깔 밀견(密絹) 20단(段), 채화선(彩花扇) 1백 파(把), 도금조자와 제자(提子) 각각 10개(箇)씩이라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11월 18일(기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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