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통신사 고득종 등이 돌아와 사정전에서 인견하고, 일본 국왕 등의 서계를 보고하다

[조선 세종]통신사 고득종 등이 돌아와 사정전에서 인견하고, 일본 국왕 등의 서계를 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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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通信使)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고득종(高得宗)과 부사(副使) 상호군(上護軍) 윤인보(尹仁甫)가 일본(日本)에서 돌아오니, 사정전(思政殿)에서 인견하고 인하여 좌승지(左承旨) 성염조(成念祖)에게 명하여 음식을 먹이게 하다. 싸 가지고 온 일본 국왕(日本國王)의 서계(書契)에 말하기를, ˝두 사신이 고맙게 글을 전하여 멀리 이르니, 천리가 멀고 머나 실로 이야기하여 대하는 것 같사옵니다. 하물며 색색의 진귀한 산물은 은혜를 입은 것이 중합니다. 누방(陋邦)이 대대로 인호(隣好)를 닦아 생각하고 앙모하는 정이 없는 날이 없으나, 그러나 나라 운수가 어려운 일이 많아서 안부의 묻는 것을 통하지 못한 지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사방에 일이 없어 소강(少康)이라 할 수 있는데, 이에 경하(慶賀)를 번거롭게 하였으니 기쁘고 감사하기가 평상시에 배나 되옵니다. 변변치 않은 방물(方物)은 별폭(別幅)에 적어 사례하는 정성을 표하오니, 엎드려 채납(採納)하기를 바라옵니다.˝ 하였다. 채화선(彩畵扇) 1백 개, 금동 장식 대도(金銅粧飾大刀) 10개, 대홍 칠목 차완(大紅漆木車椀) 대소 도합 84개, 대홍 칠천 방분(大紅漆淺方盆) 대소 도합 24개, 홍칠 흑칠 잡색 목통(紅漆黑漆雜色木桶) 21개이었다. 일본국 방주(防州)·장주(長州)·풍주·축주(筑州)의 4주(州) 통수수리 대부(通守修理大夫) 다다량지세(多多良持世)가 예조(禮曹)에 답서를 보내기를, ˝지난번에 귀국의 통신사(通信使)가 계축년 해구(海寇)의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지세(持世)가 호송하였고, 겸하여 조그마한 물건을 바치었으니 진실로 어찌 족히 채록(採錄)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생각지 않게도 전하(殿下)의 청총(淸聰)에 상달되어 특별히 통신사(通信使) 고공(高公)을 보내어, 우리 전하와 수호(修好)하는 즈음에 전지(殿旨)로 이르심을 보게 되니 놀라고 황공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인하여 서계(書契)와 예물을 주시니, 절하고 받들기를 삼가 소중하게 하여 감사한 충정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고공(高公)이 환국함에 미치어 삼가 채사(綵絲)로 짜서 만든 것 3필(匹)과, 청련초 2필과, 화백릉(花白綾) 2필과, 첩첩선(褶貼扇) 30자루, 우피(牛皮) 10장을 드리옵니다. 감히 후의(厚意)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는 것이 아니옵고, 얇은 정성을 드릴 뿐이오니 전하여 통달하기를 바라옵니다. 전하(殿下)께서는 만경(萬慶)하시고 제관(諸官)께서는 천정(千禎)하소서.˝ 하였다. 일본국 관령(管領) 경조 대부(京兆大夫) 원지지(源持之)가 예조(禮曹)에 답서를 보내기를, ˝우리 일본 지역의 고을이 비록 이웃 지경을 접하였으나, 해양(海壤) 만리에 치우쳐 동쪽 끝에 있어 화호(和好)를 통하지 못하고 한갓 덕풍(德風)을 향할 뿐이더니, 기미년 가을에 전하께서 첨지중추원사 고공(高公) 등 관원을 보내어 와서 멀리 음신(音信)을 통하니, 경사스럽고 다행하여 지극한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귀국의 명산으로 아울러 어지신 은혜를 입사오니 감사한 정성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 이 봄에 행인(行人)이 돌아가기를 고하므로, 폐읍(弊邑)의 소산인 대도(大刀) 1요(腰)와 사금(砂金) 10냥과, 백련위(白練緯) 3단(端)과 청련위(靑練緯) 3단을 싸서 드리니, 후하게 준 것을 갚는 것이 아니라 애오라지 공(空)이 아닌 것을 표하는 것이니, 다행히 조찰(照察)하기를 빌며 엎드려 진중하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세종 22년 5월 25일(병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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