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무례한 일본 사절에 대한 답례에 관해 맹사성·정초 등과 논의하다

[조선 세종]무례한 일본 사절에 대한 답례에 관해 맹사성·정초 등과 논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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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전에 일본이 우리에게 사절을 통해 왔기에 송희경(宋希璟)을 회례사(回禮使)로 보냈더니, 왜인들은 우리 나라가 중국을 극진히 섬기고 있어 반드시 엿보러 왔다고 생각하고 몹시 박하게 대하였다. 그 뒤에 또 와서 《대장경(大藏經)》을 청하기에 이를 주었던바 이로부터 통호(通好)하였는데, 이번에 온 통신 서계(通信書契)는 국왕의 글이 아니며, 심히 예의(禮義)가 없어 나는 서계를 회답하지도 않고, 또 회례의 물품도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떤가.˝ 하니, 우의정 맹사성(孟思誠)이 아뢰기를, ˝저들은 비록 무례(無禮)하더라도 회증(回贈)만은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니, 답서는 하지 말고 회증하는 물록(物錄)만을 써서 절간(折簡)하여 보내소서.˝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양화(陽貨)가 공자(孔子)에게 찐 돼지[蒸豚]를 공궤하매, 공자는 그의 없는 틈을 타서 집으로 가서 치사했다는 것이 아닌가. 저들이 우리를 대하기를 예(禮)로서 하지 않는데, 우리가 그 의사도 모르고 글을 답하고, 예물을 회증(回贈)한다는 것은 불가하지 않겠는가. 경들은 각기 이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라.˝ 하였다. 공조 판서 정초(鄭招)가 아뢰기를, ˝여러 섬의 왜인에게도 모두 미곡을 하사하셨고, 혹 바쳐 오는 것만 있으면 회사(回賜)하시지 않은 것이 없사온데, 유독 이번에만 답이 없다면 혹시 흔단이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저들은 비록 무례할지라도 우리의 도리는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다시 깊이 생각한 후에 정하겠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세종 13년 3월 6일(경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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