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일본 국왕의 사신 이라가 불경을 청구하다

[조선 세종]일본 국왕의 사신 이라가 불경을 청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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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에 거둥하여 일본 국왕의 사자(使者) 부관인(副官人) 이라(而羅)를 전내(殿內)에 인견하고 말하기를, ˝바다 물결이 험조(險阻)한데 어렵게 멀리 와서, 상사가 겨우 우리나라 땅에 들어오자마자 병에 걸리어 목숨을 잃었으니 내 매우 애도하노라.˝ 하니, 이라(而羅)가 대답하기를, ˝소인(小人)의 심정은 다 아뢰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일본 국왕의 서신(書信)에 이르기를, ˝귀국이 우리와 매우 가깝게 있어서 배가 서로 왕래하며, 통신하고 문안하여 우호(友好)의 예를 닦은 것은 옛날부터 그러한 것으로써 한 때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근래의 3년 동안은 국내에 일이 많아서 그 사이에 통신을 보사(報謝)하지 못하였으나, 성의가 해이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범령(梵齡)을 보내어 석씨(釋氏)의 대장경(大藏經) 2벌[部]을 청구하오니, 윤허를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예물(禮物)로 불상(佛像)·수정주(水精珠)·그림 부채·감초(甘草)·호초(胡椒)·구리로 만든 큰 칼·창(槍)·병풍·붉은 항아리[朱盆]·대모탁자(玳瑁托子)·흑칠탁자(黑漆托子)·매화피(梅花皮)·상어피[砂魚皮]·바랜 비단·등(藤)이었다. 석성 종금(石城宗金)이 예조에 서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지난 해에 ??사신(奉命使臣)으로 귀국에 가서 뵈옵게 되어 비록 저의 평소에 발돋움하고 바라보던 뜻은 위로할 수 있었으나, 귀국의 조정을 번거롭게 할 명령을 받들고 간 것이 많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범령을 보내어 우호의 예를 닦고, 나아가 불경(佛經)을 청구합니다. 저의 어린 아들로 부사(副使)를 삼았습니다.˝ 하고, 이어 토산물(土産物)을 바치니, 정포 15필을 회사(回賜)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세종 14년 5월 23일(경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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