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경복궁에서 망궐례를 행하고 유구국 사신의 자문을 받다

[조선 세종]경복궁에서 망궐례를 행하고 유구국 사신의 자문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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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거둥하여 왕세자와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동지를 하례하는 망궐례를 거행하고, 근정전에 나아가서 왕세자와 많은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다. 유구 국왕의 사신 하례구(夏禮久)와 부사 의보결제(宜普結制)와 선주 등이 서반 3품의 반열에 서서 배례를 마치매, 사신과 부사를 근정전 안에서 불러 보니, 하례구가 자문을 받들어 꿇어앉아서 올리었다. 그 자문에는, ˝유구국 중산왕(中山王) 상파지(尙巴志)는 서신을 올립니다. 홍무(洪武)에서 영락 연간에 이르도록 조왕과 선부왕께서 사신을 보내어 예물을 가지고 가서 바쳤으며, 또 여러번 귀국에서 사신을 보내어 우리나라에 이르매 진귀한 물품을 주셨는데, 그 후로 우리나라에서 바닷길을 잘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가지 못했습니다. 간절히 생각하건대, 이웃 나라와 교통하는 일은 또한 왕래하는 의리를 숭상하는 것이고, 행인(行人) 이 명령을 전하는 일은 화호(和好)의 맹세를 굳게 하는 것이므로, 지금 특히 정사 하례구 등을 일본국(日本國) 대마주(對馬州) 객상으로 온 배 1척(隻)에 편승시켜 지름길로 보내어 변변치 못한 물품을 받들어 국왕 전하께 올려 작은 정성이나마 표하려 하오니, 다행히 꾸짖으시고 받아주시기 바라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지금 보낸 인원에게 부친 물화(物貨)뿐이오니, 비옵건대, 무역(貿易)을 관용하여 일찍이 발송하여 돌려보내 주신다면 편리하고 이익이 되겠습니다. 예물은 소목 2천 근과 백반(白礬) 1백 근 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를 보고 말하기를, ˝날씨가 차거운데 수로(水路) 고생하며 왔구나.˝ 하니, 하례구 등이 대답하기를, ˝우리나라 조왕과 부왕때부터 서로 교호의 예를 닦아 왔사온데, 그 후에 왜인이 가로 막아서 오랫동안 수호를 폐지했던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전일의 호의를 닦고자 하여 배를 정돈하여 바람을 기다린 지가 거의 몇 달이 되었으나, 바람이 순조롭지 못하므로 마침내 오지 못했습니다. 지난 6월에 대마도(對馬島) 적의 괴수 육랑·차랑의 상선이 우리나라에 이르렀으므로 빌려 타고 오려 했는데, 또 사로잡힌 귀국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사람이 1백여 명이나 되므로 이들을 거느리고 오고자 했으나, 배가 좁고 바람도 편하지 못해서 거느리고 오지 못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왕의 후한 뜻을 알겠도다.˝ 하였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세종 13년 11월 9일(경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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