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29년, 계미년(癸未年), 1703년

조선 숙종 29년, 계미년(癸未年), 1703년

1월 1일

• 사은정사(謝恩正使) 임창군(臨昌君) 혼(焜), 부사 심평(沈枰), 서장관 이세석(李世奭)이 복명(復命)함.

1월 20일

• 임금이 대신들과 군정(軍政)의 폐해 등을 논의함.

1월 22일

• 서종태(徐宗泰)를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1월 26일

• 한성부판윤 서종태와 대사성 유득일(兪得一)이 서로를 배척한 일로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음.

2월 3일

• 송창(宋昌)을 한성부판윤으로 삼음.

2월 22일

• 모화현(慕華峴) 뒤 수구문 밖에서 도적이 행인을 약탈하고 살해하는 등 들끓는다 하여 좌 · 우포도대장을 종중추고(從重推考)하고 부장(部將) · 나졸(邏卒)은 엄히 신칙(申飭)하게 함.

2월 26일

• 임금이 대신들과 유민(流民)들에 대한 대책을 논의함.

3월 5일

• 임금이 대신들과 왜와의 교역 등에 관하여 논의함.

3월 7일

• 대신들과 함께 유민(流民)을 쇄환(刷還)하는 일 등에 관하여 논의함.

3월 15일

• 임금이 대신들과 북한산성(北漢山城) 축성에 관하여 논의함.

3월 25일

• 굶주린 백성들이 한성에 많이 모여 있으니 북한산성을 쌓는 일에 장정을 뽑아내어 한편으로는 구제해 살리고 한편으로는 역사를 독려하도록 함.

3월 30일

• 판부사 서문중(徐文重) · 예조판서 김진구(金鎭龜) 등이 북한산성 축성의 부당함을 상소함.

4월 3일

• 주강(晝講)에 나아가 북한산성의 역사(役事)를 일으키는 일에 관하여 논의함.

4월 7일

• 구창(舊倉)에서 죽(粥)을 마련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함.

4월 9일

• 임금이 태묘(太廟)에 알현(謁見)하고, 대제(大祭)를 올리기 위해 재실(齋室)에서 유숙함.

4월 10일

• 임금이 하향대제(夏享大祭)를 태묘(太廟)에서 행함.

4월 11일

• 전 홍주목사 이문흥(李文興)을 파직함. 임소(任所)로부터 올라오다가 동작진(銅雀津)에 이르러 나룻배를 빨리 대지 않는다고 민가에 방화함.

5월 3일

• 한강 · 노량 · 양화도 · 삼전도 · 임진도 등 5진에 도승(渡丞)을 두어 서리(書吏)를 차견(差遣)하고, 별장(別將)을 설치함.

5월 9일

• 특별히 궁내의 간장[御醬] 여섯 항아리와 지방에서 공물(貢物)로 바친 미역[貢藿] 1천근을 진휼청(賑恤廳)에 내려 보내 죽 끓이는 재료에 보태게 함.

5월 20일

• 기민(饑民)을 구제하기 위해 설치한 진청(賑廳)을 43일 만에 폐지함.

5월 29일

• 청의 사신이 한성에 들어왔는데, 천하가 태평하다는 이유로 사면(赦免)을 시행하기로 함.

6월 4일

• 장맛비가 연일 내려서 분사옹원(分司饔院) 청사가 전복되어, 서문의 수졸(守卒) 1명이 압사하고, 11명이 부상함.

6월 9일

• 청의 사신이 돌아가니 모화관에서 전송함.

6월 11일

• 유생으로서 나희(儺戱)를 구경하는 자는 적발하여 3년을 한하여 정거(停擧)하게 함.

6월 27일

• 황당선(荒唐船)이 바다 가운데 많이 출몰하여 조정에서 연변의 진(鎭)과 포(浦)에 신칙(申飭)하여 잡게 했는데, 장연(長淵) · 백령도(白翎島) · 소청도(小靑島) 등에서 잡힌 자가 50여 명임.

7월 11일

• 의금부도사 참하(參下) 5명 중 3명은 경력(經歷)으로, 빙고별검(氷庫別檢) 4명 중 2명은 별제(別提)로 하는 등 관제를 개정함.

7월 16일

• 날이 가물어 기우제를 지냈더니, 이 날 비가 내려 제관(祭官)들에게 차등 있게 상을 내려줌.

7월 22일

• 임금이 태묘(太廟)를 배알(拜謁)함.

9월 19일

• 임금이 영희전(永禧殿)을 전알(展謁)하고 작헌례(酌獻禮)를 행함. 3년에 한 번씩 성배(省拜)함을 정식(定式)으로 삼음.

9월 21일

• 황당선(荒唐船)을 금지해 달라는 일로 청의 예부(禮部)에 보낼 자문(咨文)을 사행(使行)에 부쳐 보냄.

9월 25일

• 양전(兩銓)으로 하여금 서북지방의 인재를 수용하도록 함.

10월 1일

• 영릉(寧陵) 정자각(丁字閣)이 준공됨에 중건청(重建廳) 당상 조상우(趙相愚) 이하 여러 관원에게 상을 내림.

• 사산(四山)에 송충이가 극성을 부리므로 한성부에 명하여 방군(坊軍)을 징발하여 잡도록 함.

10월 11일

•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전경문신강(專經文臣講)을 실시하고, 지금부터는 임강(臨講)을 배강(背講)으로 고쳐 정식(定式)으로 삼도록 함.

11월 16일

• 직제학 원호(元昊)를 원천석(元天錫)의 사당에 합향(合享)하도록 하고, 학사 권절(權節)의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우도록 함.

11월 17일

• 사간 이세유(李世維)가 중외(中外)에 절도가 심하자 포도대장과 종사관의 파직을 청함.

11월 26일

• 한성 근교에 호환(虎患)이 극심하므로 삼군문(三軍門)으로 하여금 포수를 내어 잡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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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辛巳年), 1701년